▲오는 10월 11일(동정마리아 천주의 모친 첨례) 로마에서 있을 제2차 바티깐공의회에 여러가지 특색이 있다.
그중 중요한 특색의 하나는 평신자가 허용되는 범위에서 교황께서 친히 주재하는 모임에 「옴써버」로서가 아니라 초청된 의원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생각할수록 황공스럽기만한 소식이다. 일개 교구의 그것에도 나서기 어려운 평신자의 신분을 어좌(御座) 곁에 앉히고 교황께서 친히 대사(大事)를 의논하신다고 하니 어찌 역사에 특기할 감격이 아닐 수 있으랴
▲허나 가다듬어 생각해 보면 『교회는 평신자이다』고 한 비오 12세의 강력한 표현과 같이 평신자를 떠난 교회는 상정(想定)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에 감격과 어깨만을 으쓱할 일은 아니다. 다른 곳을 바라볼 것 없이 제 둘레에서 평신자의 위치를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4년전, 로마에서 제2차 평신자 사도직 세계대회가 있었다. 그때 동(東)과 서(西)를 대표한 연설이 있었는데 동을 대표한 중국의 석학(碩學) 오(吳經態)씨는 평신자사도직 문제에 들어가서 『나는 교회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자 사이는 마치 미사봉헌시에 사제와 보미사자와 같은 줄 안다. 평신자는 사제가 아니며 제대 하층에 무릎을 꿇고 복사하는 자인 것이다』라고 설파(說破)했다. 참 됬비어볼만한 설명이다.
▲수라파에서는 소위 「다이알로구 미사」 즉 대화(對話) 미사가 거의 완전하게 실시되고 있다. 이 대화미사에 참예하면서 오박사의 설명이 새삼스러웠다. 미사에 나온 신자들이 소리를 모아 보미사자와 같이 「응」을 하게될 때, 『성직자와 평신자』의 관계는 적어도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동안은 완전일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평신자 사도직에 어려운 설명이 많은 줄 안다. 그러나 그 원칙을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방도는 아마 이 대화미사밖에 없는게 아닌가 한다. 한국에 가톨리시즘을 반입해 오던 그때, 물론 섭리(攝理)의 거룩한 작용(作用)으로서만 가능했을 일이로되, 평신자에 결정적 직능을 맡겨주신 것은, 오늘 교회 안에서 평신자의 위치를 높이려는 마당에 또한번 현양(顯揚)되어야 할 일이다.
▲이런 로마의 뜻을 받드는 평신자사도직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되고 또 행동되어야 하겠다. 그렇지 못하면, 제 할 일은 다하지 않고 훈장만 찾으려는 자의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