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사도직의 장래, 방향 및 조직을 논하는 일회합에서 과거 천주교 총련(總聯)을 서울교구 안에 두던 때까지 치켜올라가서 회고와 반성을 했다. 평신자 조직을 재평가(再評價)할 때는 성숙(成熟)하여 무르익었다고 할만하다. ▲허나 이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의 반성이라 할까, 꼭 조직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절실한 자각이 긴요하다. 우리는 위(上)로 본당신부의 말씀을 잘 봉행한다 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 좋을까? 바꿔서 말하면 계명을 잘 지키고 덕행을 닦는 것 만으로 신자생활의 완벽을 기했노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데서부터 재고해 볼 만하다. ▲본분을 잘지켜 좋은 신자생활을 다하는 외에 무엇이 더 요청되는냐?고 할지모른다. 실상 그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마귀, 세속, 육신 삼구(三仇)를 물리치고 고요히 기구중에 천주님과 일치할 때 어찌 그것으로 족(足)하다 하지 않으랴.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땅위(地上)에 서있는 교회의 일원인 것을 자각(반드시) 해야한다. 그 교회가 날로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사회환경에 대처하고 잇음을 심각히 느껴야 한다. ▲개인적 신앙생활을 통해서 위(上)로만 일치한다는 것은 이미 낡은 생각에 속할 수 있다. 물론 특수한 소명(召命)에 의한 수도생활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위로 일치하는 노력과 병행(倂行)하여 옆으로도 손잡을 일이 허다한 것이다. 초자연(超自然)은 자연을 밟고(스탭)서 도달할 수 있음과 같다고 할까. 종적(縱的)인 연결은 횡적(橫)인 연결을 얻어서 비로소 옳게 얽어(繳)질 수 있는 것이다. ▲평신자 사도직은 위(上)로 종적인 관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옆으로 횡적인 일을 하자는 것이다. 가령 한 본당 안에는 본당신부를 중심으로 각종 조직이 있다. 레지오 마리애가 있고 JOC가 있고, 학생회, 성모회, 데레사회 그리고 보이 스카우트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조직이 있는데 이같은 단체를 망라하는 본당단위의 악숀체계(體系)를 세우고 그것은 곧 교구 악숀에 포함되어 통할됨으로 정연(整然)한 한 체제(體制)가 완성되어야 한다. ▲ 가톨릭신자의 자랑은 단결하고 조직하기 좋아하는데 있다. 그것을 역사에서 찾아보기에 어렵지 않다. 우리의 순교사가 말해주듯 혈육간 그것이 그만한 서로의 뜻을 맞춰 사경(死境)을 같이하겠느냐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오늘 다시한번 뭉쳐서 일해야 할 악숀의 황금기를 시현해야겠다. ▲이같은 악숀조직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지금 각국은 교구를 연합하는 전국조직을 완성하고 각종 국제교류(交流)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방면에 적극적인 관심이 표시되어야 할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