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순주일, 2월 25일) 출판물 보급주일을 맞이한다. 1950년 한국주교회의는 『씨뿌리는 비유』의 복음을 읽는 6순주일을 택하여 교회 출판물이 널리 펴지도록 강조할 것을 명하는 동시에 「출판물 보급주일」로 제정(制定)했었다. 한국뿐 아니라 각국 주교회의는 2월 한달을 출판물 보급의 달로 정하고 있다. 미국의 주교회의는 이미 1921년 2월부터, 그리고 스페인서는 이보다 앞선 1920년 2월부터 이 운동을 시작하여 그후 각국에서 동조(同調)하게된 것이다.
이 유서있는 날을 자축(自祝)하는 뜻에서 먼저 교회출판물 자체(한국에서의)에 대한 가림없는 반성을 해볼만한 일이다. 교회출판물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을 드리고 있는 것은 우선 정기간행물인 것이다. 따라서 정기간행물 등은 가톨릭출판물의 지도적인 중책을 맡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①경향잡지는 한국주교회의 기관지이며 어느 한 교구의 사업에 속하지 않는다. 그 역사와 전통은 깊고 건실한 뿌리를 장만하기에 충분했다. 도시에서 산간벽지까지 그것도 대(代)를 이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 앞날은 지난 좋은 전통을 저버리지 않고 답습하는데 있으며 더욱 정확하고 더욱 친절하며 그리고 부드러운 내용을 갖추어 가는데 달려있다고 본다. 경향잡지가 가톨릭 지성(知性) 및 문화를 박으로 선양한다기 보다는 일반 신자들의 신앙생활 및 교회생활의 좋은 동반자(同伴者)가 되고 생활의 지침이 되었으면 한다.
②월간 「가톨릭 청년」도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잡지는 가톨릭 지성 및 문화를 대표할 자기사명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가톨릭 사상계(思想界)와 같다고 할까. 이 잡지를 통해서 국내의 중요한 동향을 읽을 수 있고 접종(接種)되는 이 땅의 세속적 제사상에 경종을 올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잡지의 제약(制約)을 경홀히 여기는 일은 있더라도 신학, 사회, 교육, 문학의 평론을 계쏙 실려야 할 것이며 또 그 시간성에도 많은 고려가 있어야 할 줄 안다. 여기에 따르는 운영면의 곤란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고급잡지가 많은 부수를 확보하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가령 필자의 권위와 적어도 일년간의 일관된 내용을 실을 수 있다면, 그 값을 알게되겠으며 모든 지성인들의 존경을 받게 될 줄 안다. 외국의 설정을 빌려볼 때 가톨릭 출판물은 한갖 호평보다는 역시 필자 및 내용의 권위로서 성공하고 있음을 본다.
③가톨릭시보는 주간지로 보도이 신속과 확인에 부심하고 있다. NC통신, RNS통신 동사진보도 그밖에 구라파의 중요 신문 및 각종 잡지 등 뉴스 · 쏘오스를 확보하고 있다. 신문의 체제를 유지하려는데 따르는 막대한 제작비를 던지고 있으면서 더 많은 독자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신문으로서의 더 말숙한 차림이 필요하다.
서울과 지방에 교회가 경영의 주체를 장악하고 있는 두개의 일간지가 있으나 일반적 신문사업을 하고 있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우리사회에서는 산아제한운동에 부수되는 범죄를 법률(刑法上落胎罪 等)과 병원이 방조하고 있고 신문은 이를 교사(敎唆)하고 있음을 본다. 모순과 안바란스(不均衡)를 교호(交互)시켜 가고 있는 듯한 그 아무것에도 과감한 사회정의(正義)를 발휘할 줄 모르고 있다. 가톨릭 사회관(社會觀)에 입각해야 할 제사명을 알고 본말(本末)을 뒤엎지 말 것이다.
앞에 언급한바 1950년 봄에 한국주교회의는 이땅에 가톨릭 출판물이 잘 보급될 것을 바라는 뜻으로 『출판물 보급주일』을 제정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십년을 더 경과한 오늘, 과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괄목할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계획이 결여했고 너무 성급한 열성만을 앞세운 감도 있다. 그 때문에 장래에 대처할 큰 문제는 안으로 철저한 협동활동을 도모하는 일이다. 오직 이러한 방법반이 제반 난관을 타개해줄 것이다. 또한 전국 주교회의의 본뜻과 그 명하시는 바를 준행하는 길이되겠다. 어느 수도회 등이 출판포교를 분담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겠으나 그분들이 이 땅의 실정을 알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출판사업은 일조일석에 성과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은 그분들이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전국 5십만 교형자매들은 앞에 지적한 한국 가톨릭 출판계의 사정을 함께 걱정 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한국 가톨릭 출판물이 단지 교리책 정도에서 조속히 벗어나 적극적으로 한국 지성과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될 때 우리 모두의 입장도 튼튼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