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가족계획(家族計劃)이란 가족의 수효를 부양능력에 맞추어서 적절한 식구(食口)를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 찬동할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부양 능력 즉 수입이란 것은 일정한데 더어놓고 권속만 붓는다면 우려할만한 일이겠다.
▲ 그 때문에 교회는 가장 적절한 가족계획에 신중한 주의와 권고를 계속 말하고 있다. 첫째로 정덕(貞德)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혼배한 젊은 부부 간의 결혼정덕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터이다.
「부룻셀」의 대주교 <세낭> 경은 그의 저 『사랑과 절제』에서 이제 성교육은 필요여부를 논의할 때가 아니고 적극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하고 혼배한 부부간에 그리스도교인적 용기를 발휘하는 부부행위의 절제(節制)를 실천할 것이라고 했다. 유물사관(唯物史觀)의 발전은 지금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따라서 성(性)에 향락을 구하는 그 방면의 자극은 과연 그리스도교인의 지상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성의 절제를 요구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 교회가 강조하는 「리듬」법의 실천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성의 임신 능력은 한주기에 5·6일밖에 되지 않는다. 임신할 수 있는 기간이 되는 5·6일간의 성적 절제를 실행한다는 것은 용이할 뿐 아니라 <세낭> 대주교의 말을 빌리면 혼배한 부부간의 애정을 더한층 이상적인 방향으로 또한 천주께서 정하신 「리듬」의 묘(妙)를 즐길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리듬」법 실행에 있어 그 기간을 산출하기가 번거럽다는 점은 있다. 한편 생각해보면 그정도의 번거러움에 머리를 쓸 줄 모르고 생활의 계획을 어찌 세울 수 있겠는가. 생활의 계획이란게 없고 무작정한 살림을 그리고 앞날은 운명에 맡긴다는 식으로 살아가도록 교회는 인공적 산아제한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점 더욱 철저한 인식을 박아주어야겠다. 교회는 인공적 산아제한을 철저히 반대하고 있지만 가족계획의 좋은 결과 등 많은 경제적인 이유를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통회와 보속을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교인적 희생을 실천하는 봉잿때에 부부간의 정덕문제와 아울러 교회에서 장려하는 리듬법(週期的禁慾法)에 관심을 보내자.
▲성 <아오스딩>은 『천주께서 우리 영혼을 지배하시듯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