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주일, 서울 대구 광주를 비롯한 중요본당 미사에 나갔던 분들이면, 대주교 3위 임명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기도 했을 것이다. 대주교를 눈으로 본 일 조차 없는 우리들인지라 대주교 관하에서는 행정상 어떤 변동이 있고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대체 주교들은 자기 소속하에 두는 대주교의 위치를 까마득한데 두고서 생각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자 중앙지를 비롯한 각 일간신문들은 「바티깐」발표와 거의 몇시간의 거리를 두고 재빨리 보도했으니 교회 안팎은 경축일색(一色)을 거듭 칠해갓을 뿐이다. 중앙지 H지는 피로겪은 대원군 · 일제(日帝)의 박해 끝에 실로 백삼십일년의 가시밭길을 더듬어온 한국가톨릭은 이제 더욱 뚜렷이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줄거리의 큰 제호를 달고 서울 · 대구 · 광주의 대주교구 승격을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보도라기 보다는 경축기사로 읽을 수 있었다. ▲경축의 도가니에 잠긴 가운데도 조용히 생각해 볼 일이 몇가지 있다. 대주교를 중심으로 완전한 자치교구가 실현된 것인데 그 완전하다는 뜻은 어디까지나 권한(權限)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완전한 자치교구의 실현은 백년을 두고 갈망해온 것이니 이제 조그마한 불만도 있을 수 없는 이 마당에 우리가 마땅히 이와 병형시켜야 할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사정은 최근 유엔에 가입되고 있는 어느 신생(新生)공화국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식민정책의 굴레를 벗어나 속성(速成)으로 독립체제를 갖추고 따라서 대주교구를 실현하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오랜 박해시대와 및 부당한 일제(日帝)와는 투쟁하면서 더욱 공고한 교회의 깃틀을 잡아왔고 1945년 자유를 회복하자 그 감격으로 건걸하는 교회에 온갖 정성을 자쳐왔다. 그것은 참으로 의욕(意慾)에 찬 것이었다. 건설의 일념(一念)에서 때로는 무리(無理?)를 강행하기도 했다. 6·25의 뼈를가는 쓰라림을 겪어가면서! ▲이렇게 찾은 오늘의 영광을, 우리는 제본당의 그리고 교회 각종기관의 자치(自治)에서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려야 하겠다. 우멋보다 본당의 자치를 선행(先行)시켜야 한다. 자치본당의 실(實)을 얻어 모든 면목(面目)은 비로서 세워진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일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