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모지(某紙)에 「향토 문화를 살리는 길」이란 표제를 걸고 각지 문화원장 또는 공보원장들이 모여서 좌담회를 가진 바 있다. 그분들의 발언에서 우리나라 농·어촌의 사정을 엿볼 수 있다. ▲농촌의 신문잡지 등의 구독상태를 보면 『신문 잡지가 전혀 한 부도 안 들어가는 마을이 많아요. 조금 나은 데가 한 두 부 들어가는 정도지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특히 신문은 배달관계로 시골서 또 2, 3십리 씩이나 떨어진 마을에서는 거의 정상적으로 보는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한다. 그러면 라디오가 있으니 그런 불편을 들어줄께 아니냐?고 할 지 모른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남한의 6백여 도서(島嶼)를 장악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중 유인도(有人島)가 3백이지요. 그런데 지금 농촌에 들어가 보면 신문 하나를 구독할 수 없고 부락을 통틸어 라디오 하나가 없는 곳이 허다하지요. 그래서 어촌 문화를 향상시키는 데는 책자같은 것보다 라디오 한 대를 보내준다던가 또는 계몽·문화영화 등을 보내주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섬에 영화를 가지고 갔더니 전등불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노인이 있는 것을 제 눈으로 봤어요』 또 한 가지 ▲『시골에서는 학교가 지식인의 집단체이지요. 농대생이나 고등학교 교사들이 문맹퇴치다 생활개선을 부르짖고 4H 구락부를 이용해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지요. 그래서 그 근방이 문화의 향상이 빠르고 촌민에게 꼭같이 이익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겁니다』 이렇게 발언하고 있다. ▲이런 소리가 어느 가식(假飾) 없는 증언(證言)같이 들린다. 계몽 활동이 활발한 곳에 문화의 향상이 빠르다고 하는데 그네들이 말하는 문화란 어떤 생활문화를 두고서 하는 소리인지 짐작이 안 가는 바 아니지만, 어째든 어느 정도의 그런 시설이 요긴하다느느 소리에 십분 동의가 가는 것이다. ▲교회는 그 서 있는 곳이 도시이건 산간 벽촌이건 진정한 의미의 문화의 모체(母體)인 것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있으랴. 허나 농어촌 교회에는 궁하고 없는게 너무나 많다. ▲어느 도시 본당과 혹은 그곳 악숀 단체와 시골 본당간에 다정스런 자매관계를 맺어 서로 교류할 수 없을까. 큰 본당의 책, 라디오, 환등기 등을 빌려주고 받고 그렇게 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