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과 훗달에 걸쳐 문화, 체육, 예술행사가 성하다. 이와 동시에 독서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연중 가장 좋은 계절에 또 밤도 길고 하여 독서에 알맞다는 것도 그 한 까닭인 것으로 생각된다.
독서란 곧 책을 읽는 것이겠으나 한편으로 출판물에 대한 관심도 보태여서 생각할 수 있다. 마땅한 책들이 없고서는 독서열을 올릴 수 없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네 독서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만한 것이 있는 줄 안다. 여기 사회학적인 조사가 있었으면 한다. 과연 독서열이 높은 국민으로 자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을 반성해 볼 만하다.
그 대답은 「否」일 것이 뻔하다. 잠시 책사를 들여다 볼 때 곧 그런 인상을 받는다. 책사에 즐비한 그것들을 볼 때 이곳의 출판문화는 활기를 띄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얻어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일반 경제사정이 잘 되지 못하고 있는데 유독 출판만이 잘 될 수 없을 것은 당연한 귀추이겠다.
이런 것은 일반 가정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문화란 학교, 도서관 혹은 박물관에 저장되어 있어야 할 것은 아니다. 그 극단적인 일예로서 쏘련에서 우주비행 실험에 몇 가지 성공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쏘련 국민의 과학 수준이 높아졌음을 말하는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대(古代)의 찬연한 왕궁(王宮) 문화(?)와 같이 오히려 민중과는 무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네 각 가정을 들여다 볼 때 책에 대한 관심은 한심한 지경인 것을 솔직히 인정할 것이다. 건전한 문화의 기반은 가정 안에 닦아져 있어야만 한다. 가정이 곧 문화의 온상(溫床)이어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모든 일은 가정적인 그것과 병존해 가야 하는 법이다. 첫째 우리네 살림에는 가정에 좋은 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가정에 책이 없는 이유는 라디오, 신문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온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것이 「마스·콤」의 구실을 잘하고 있고 더욱 그렇게 발달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폐단을 관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폐단은 그것은 한 편익(便益)을 거들어 주고 있을 뿐, 일용할 상식을 충족시켜 주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필경 그런 것은 인간의 건전한 사고(思考)마저 제한(制限)하는 해독을 끼쳐줄 수도 있다. 사고(思考)의 자유와 훌륭한 창조에의 의욕(意慾)을 줄여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상 일반적 실정을 들어본 것이다. 그런데 그 범위를 줄여서 우리 신자들의 형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가톨릭 신자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서의 제 사명감에 감(鑑)하여 완성한 독서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톨릭 신자 가정에는 교회서 출판된 그 요긴한 것들이 구비되어 있을까? 신자가정에는 적어도 복음성경만은 다 가지고 있을까?
X교구에서 성대한 교리경시대회가 있었다. 그 심사를 담당했던 G신부님은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교우들의 교리 수준이 매년 높아가고 있는데 해마다 복음 성경에서 출제(出題)의 중점을 둔 결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현저하게 성장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은 작년에도 그랬고, 금년 역시 「프로테스탄트」에서 개종한 분이 우승을 했다는 것이다. 그 연고는 성경을 많이 읽은 때문이냐고 했더니 그 까닭도 있겠지만 그들이 저쪽에서 전혀 모르던 교회에 대한 심심한 흥미를 가지고 교회출판물을 열심히 뒤져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출판된 교회서적의 목록을 훑어볼 때 그 질·양에 있어 대단치 않다. 첫째 일관된 계획이 없는 듯하다. 독자층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새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번역물에 있어서도 새 경향을 소개하려는 성의가 엿보이지 않는다. 한국적인 견지 즉 사목사회학(司牧社會學)에 입각한 값비싼 노력이 부족한 듯하다.
이런 실정에도 부룩하고 거기서 상당한 약효(藥效)를 짜내고 있음이, 앞에 예증(例證)한 교리경시 우승자에게서 분명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되풀이 하거니와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때 여러 서적을 통해서 교리공부 하기가 재미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재미 있었다는 말에 색여 볼만한 것이 있다. 되씹어 볼만한 것이 있따. 교리공부가 고된 노력이요 고통스런 것이어서는 재미란 울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신자생활을 하는 동안 무의식 중에 생겼을 그런 타성을 떨어버리지 않고서는 교회 서적을 대하는 재미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 서적에서 흥미 즐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큰 은혜에 속하겠다.
어느 두메 골짝 본당에서 선교하고 있는 독일인 H신부님의 「못토」는 『우리 교우들은 무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농번기를 제하고는 거의 매일밤 교리강좌를 실시하여 자기의 「못토」를 실천하고 있었다 한다.
『교우들은 무식할 수 없다』 그런데 교우들이 무식하다면 「에리떼」로서의 자기포기(自己抛棄)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가 선(善)의 목적에 선한 수단으로 육(肉) 속(俗) 악령(惡靈)과 선전(善戰)을 해가고자 할진대 그 무기로 가톨릭 출판물을 손잡지 않을 수 없겠다.
교회서적에 대한 일반적 독서열의 향상과 당무자들의 더 한층 과학적이요 치밀한 출판 활동을 촉구한다. 그리하여 문화 일반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를 반영할 수 있어야 문화의 속화(俗化)를 균형(均衡) 잡아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