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교황님은 유모어가 풍부한 어른이다. 어느날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멀리선 근위병을 보고 『너 이것 좀 먹어라』 하시는데 어리둥절한 병사가 『성하 이곳을 누가 지킵니까?』하면서 더욱 꼳꼳해지니까 교황님은 그곁으로 다가서면서 『내가 지켜주마』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만 엮어도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다. 인간 교황님의 풍모를 족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 누구의 소설에서였던가 『그는 비록 천한 것이 모두였지만, 인간다웠다. 세상에는 인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 그 얼마나 많으랴.』고 한 것을 기억한다. 인간을 드러낸다는 뜻을 여러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좀 해봅시다.』 할 때는 권리 · 의무 관계를 떠나서 피차에 다소의 손해가 가더라도 관대히 해결지어보자는 것이 되는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비합법적으로 해치우자는 것이 되는 수도 있다. 아마 노상 쓰는 「인간적」이란 말 뜻에 과히 어긋나지 않는 분석이겠다. ▲허나 『인간적이 못된다』고 하는 우리말의 뜻은 반드시 앞것의 대조(對照)는 아닌상 싶다. 우리네만큼 인간을 강조하는 민족은 드물다. 사람답지 않다라던가, 사람이 아니다고 하는 만큼 그보다 더 큰 호욕은 없는 것처럼 간주하고 있는데 우리말에 「사람」이라 할 때는 거기 인격과 품성을 지나칠만치 포함시키는 까닭이다. 그쁜 아니다. 예의(禮義) 신의, 우정, 모든 그 고장 관습까지도 포함시켜 그것을 벗어났다는 힐난을 덧붙여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人間은 完全히 本能만 남은 動物일 수는 없어서 良心의 價値判斷이 있고 그 저울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울을 自己에게 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만 잰다. 뒷간 기둥이 헛간 기둥 나무라는 格으로 他人의 所行에 對하여만은 無慈悲하도록 苛酷하다. 모두다 서로 죽일놈이다 이러다간 살 사람은 안남을 것 같다.』(具常集에서). 이것이 세태를 애리하게 파해친 그대로의 관찰이라면, 앞에 붙인 소설구절이나 우리 고유의 인간에 대한 서정관(抒情觀)은 무의미(無意味)할 뿐 다만 인간상실(喪失)만 남아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때 이런 면에서도 인간을 회복해야 할 일인줄. 인간인 것을 드러낼 수 있고 그 냄새마저 풍길 수도 있어야 그로 더불어 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까지 교황님은 한시대를 이끄는 참사표(師表)이신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