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中央準備委員會)가 지난 3월 26일 바티깐에서 개막되었다. (旣報) 회의 제1일은 바티깐 대회의실에 62명의 동 위원들이 참석했으며 그 가운데는 42명의 추기경들이 포함되었다고 전한다.
지금까지 5차에 항(恒)한 동 준비회합이 있었으나 회의 진행이나 결과 등을 공식으로 발표한 일은 없었다. 물론 교황 성하께서 주시는 말씀 및 어느 부분적인 개인연설은 공보기관을 통해서 발표되기도 했다.
이와같이 비공개리(非公開裡)에 준비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오는 공의회때 필요한 제반준비, 가령 좌석(座席)의 배정에서 비롯하여 어느 부서(部署)의 누가 어떤 일을 해야하고 하는 실무자들의 훈련까지 물생틈 없이 완성해두고 있는 것이다.
동 준비위원회 기구(機構)는 ①신학 ②주교 및 교구행정 ③성직자 · 평신자 규율 ④수도(修道) ⑤성사(聖事) ⑥전례 ⑦신학생 ⑧행정일반 ⑨그리스도교일치 ⑩전교 ⑪식전(式典) ⑫공보 등으로 분과위원회를 형성해두고 있다., 준비회의는 전체회의와 분과별로 진행되고 있는 듯한데 그 전체회의에 속하는 「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가 이번에 제5차 회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저체회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오는 공의회에 사정시킬 공의회 의제(議題)를 중앙준비위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일이다. 중앙준비위원회는 이같이 실질적으로 결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종결한 후도 계속해서 존속한다고 한다. 동 위원들의 구성은 전체교회를 대표할 수 있게 임명되었으며 또한 중앙준비위원회 구성에 앞서 전세계 2,500명이 넘는 모든 주교들 앞으로 일일이 공의회 의제안(議題案)을 받아 그것을 토대로 준비사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앞에 언급햇음과 같이 동 준비위원회 사업은 비공개의 것이 많으므로 그 막중한 사명(使命)에 비겨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제5차 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 전체회의 벽두에는 「미사경본」 변경에 관한 의제(議題)를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티깐 방송의 논평을 통해서 공개되었다. (본보 323호 참조) 우리가 알기로는 이것이 처음인 것이다. 바티깐 방송은 동 중앙준비위원회가 미사경본 변경에 관한 의제를 상정하기로 결정했다고만 하지 않고 그 의의(意義)를 또한 소상(昭詳)히 논평하였다.
미사성제는 두 부문으로 대별한다. 그 첫째는 예비미사요 둘째는 제헌미사인 것이다. 동 방송은 『미사의 첫부분은 분질적으로 교리에 관한 것으로 신자들이 더욱 기밀히 둘째부분에 결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부분은 성체성사를 포함한다. 그때문에 첫째 미사에 더한층 세밀한 「텍스트」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텍스트」의 선택에 관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성경을 읽게 마련될 것을 시사하였다. 미사중에 더 많은 성경을 읽게된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 일상생활에서까지 더욱 철저히 성경을 체득(體得)해야 할 것임을 뜻한 것인줄 안다.
기술적으로는 예비미사에 더 많은 성경구절을 삽입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전례에 관해서도 신자들이 전례의 본뜻을 알아듣고 유의적(有意的)으로 전례를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미사성제는 실로 모든 전례의 으뜸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관람(觀覽)하듯 쳐바도고 있기만 해서 전례의 효험을 다 누릴 수 없는 법이다.
여기서도 문제되는 것은 신자들이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전례형식(形式)으로, 말하자면 더 절실히 느껴지고 공감(共感)이 갈 수 있고 하는 현대적 이해(理解)를 도외시(度外視)할 수 없는 것이다. 동 방송을 그대로 인용하면 『사제가 취하는 언어(言語) 제스츄어(行動) 및 의식(儀式)은 많은 참례자에 이미 알아듣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미사성제의 변경은 적당하고 유효한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이렇게 말로써 표현하기는 쉬우나 그것들은 모두 전문가들의 깊은 연구와 공의회의 찬동을 거쳐야 하는 지극히 중대한 문제을인 것이다. 제마다의 해석을 달거나 경솔한 화제에 올릴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님을 명심할 일이다.
바티깐 방송은 공식적인 논평만을 하고 있지 않다. 일반 방송과 같이 자유로운 의견을 충분히 반영시키기도 한다.
오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 보내는 우리의 지대한 관심과 같이 그만큼 모든 그 준비 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져, 세기적(世紀的)으로 누리는 보람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