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年例) 전국주교회의가 금년에는 11월2·3일 양일간 성신대학 대강당에서 이북(以北) 평양교구장, 함흥교구장을 포함한 전국 11위 주교들이 모여 교권(敎權)에 관계되는 제반문제를 의논하였다.
주교들은 바로 종도의 후계자이며 교황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으로 각기 교구를 관할(管轄)하며 거기 맡겨진 입법·사법·행정의 권한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전국주교회의를 가지는 연고는 공동의 문제를 검토하고 상호긴밀한 연관 아래 교회발전과 신자들의 생활향상에 이받이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국주교회의 공동교서를 보면 『우리 신자들은 신앙의 정신으로 재건국민운동에 적극 협력하라』고 하고 신자들이 재건국민운동에 적극으로 참여해야 할 까닭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재건국민운동은 첫째 구악(舊惡)을 일소(一掃)하는 데 있다. 과거 우리가 경험한 정당정치(政黨政治)는 정당간에 반목(反目)만을 일삼아 정당본래의 뜻을 망각하는 수가 많다. 그로조차 오는 피해는 그대로 국민이 입을 수 밖에 없었따.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그런 구악의 책임이 위정자에게만 있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국민 자체의 자각이 부족했고, 그러는 가운데 어느듯 국민적인 대의(大義)를 잃었다고 할까. 사치와 안일(安逸)에만 흐르게 되어 그 양심은 치완(馳緩)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여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재건국민운동은 앞서 지적한대로 구악을 일소하고 과거와는 아무 인연도 없이 완전히 새 경지에 들어서는 일대쇄신(刷新)인 것이다. 마치 우리 신자들이 고해성사로 깨끗해짐과 같은 새 결의(決意)와 용기를 가지고 박차고 나섬과 같은 것이다. 동 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일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가정과 사회유지 발전에 적극적으로 봉사하여야 하고 근검절약하여 물질을 저축함으로써 가정을 돌보고 쓰고 남는 것으로 이웃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줄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의 구체적인 생활태도를 명시(明示)하였다. 신자들의 국민생활을 두 방면에서 보고있다. 그 하나는 사회생활이요 둘째는 가정생활이다. 사회와 가정을 구분해서 혹은 그 어느 쪽에 더 많이 충실할 것이냐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동 교서가 명백히 설명해주고 있음과 같이 재건국민운동에서 강조하는 내핍생활을 이행하여 저축할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을 장만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저축할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을 닦기에는 여간 가정에 충실해서 성취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모름지기 가정에 충실하란 말과 같이도 들린다. 다음 쓰고 남는 것은 이웃에 베풀어야 한다고 함으로 자선(慈善)의 의무를 평행(平行)시켜 놓았다.
이같이 『우리 신자들은 신앙의 정신으로 재건국민운동에 적극으로 협력』할 충분한 교회정신적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 교서 끝에 『특히 신자지도를 맡은 모든 본당신부들은 주일강론에서도 신자들에게 이러한 정신과 실천을 강조해주기 요망하는 바이다』고 한 것은 앞으로 교회가 적극으로 이 재건국민운동에 박차를 가해나갈 것을 또한 명시한 것이다.
이번 주교회의는 세 단체를 정식으로 인준(認准)하였다. ⑩천주교나환자사업협회 ②한국천주교 인보회 ③한국천주교 노동청년회(JOC)이다. 한국 천주교 인보회와 JOC는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그 기반도 튼튼하고 훌륭한 성과를 걷고 있는 중이다.
천주교 나환자사업협회는 지금까지 지역별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여우이해온 동일한 구라단체를 일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 오랜 역사를 가진 구라단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요구호실정과 비길때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여기에는 비단 우리 신자들 뿐 아니라 정부 및 전 국민의 거족적인 성원이 있어야겠고 단시일 안에 그 실(實)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만큼 시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교교서 혹은 전국주교단 공동교서에 접한 우리들의 각오 및 마땅히 할 바는 무엇인가? 첫째 그 본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는데 있겠지만, 더욱 절실히 터득하기에는 각 학생회, 청년회, JOC, 레지오 등 기타 각 모임에서 이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연구회를 가지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서의 내용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공부(社會敎義 등)를 겸하게 될 줄 안다. 이번 교서를 보더라도 몇 줄의 글로서는 도저히 표시될 수 없는 곳이 허다한 것이다. 이같이 함으로 중요교서의 본지(本旨)를 이어가는 길을 얻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