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文化財) 애호 기간을 맞이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위원회(保存委員會)가 설립되고 국가예산을 던저 보수(補修)를 실시하는 등 그 보존권(保存圈)을 책정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국내 도처에 산재(散在)해 있는 지보적인 문화재들이 풍우에 시달리고 이토(泥土)에 매몰되는 일이 없도록 앞에 말한 보존권(保存圈)을 분명히 책정하고 책임성 있는 관리(管理) 행저을 해 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존권이란 것을 문제삼을 만하다. 가령 관광객들의 눈에 띄우는 곳에만 그것도 극히 형식적으로 손질을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
비단 이 문제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 유치(誘致)를 위한 각종 사업에 대해 본란은 몇가지 기우(杞憂)를 표시해왔다. 어떤 종류의 관광객임을 가릴 것 없이 그들이 여행자임엔 틀림 없다. 호기심이 앞서기 쉽다. 만약 그 호기심을 맞추기 위한 그 무엇을 노린다면, 그 결과는 귀중한 문화재와 더불어 큰 망신을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석굴암(石窟庵)은 예술 작품으로서 미(美)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세계적인 존재이다. 그 조각의 선(線)이나 석가본존(釋迦本尊)의 균형잡힌 체구(體軀)나 자애심이 흘러넘치는 면상(面相)은 참으로 영감(靈感)을 받는 듯한 예술의 진가(眞價)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가를 전해주기에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 주변에 잘못된 인상을 박아놓는 일이 없어야겠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예술작품 중에는 불상(佛像)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석굴암의 석가본존만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천삼백년 전에 창작(創作)된 것으로 세계 미술사(美術史)의 경이(驚異)의 적(的)인 것이다. 전아(典雅)하고 정밀(精密)하고 아담(雅談)한 그 전체미(全體美)를 세계 어느 미술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같이 위대한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윌에게 만약 그 진가(眞價)를 알아볼 눈이 없다면, 진정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 민족이란 귀중하고 소중한 것을 그대로 평가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도 생각된다. 「로오마」의 문화재 보존 활동은 세계의 자랑일 수 있을 것이다. 「로오마」 본역(本譯)은 아마 구라파에서 가장 현대적인 면목을 갖추고 있는듯 한데, 그 우측에 헐어진 성터의 돌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존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런던」의 「하이드·파아크」에는 덕수궁 돌담과 흡사한 것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문화재 보존의 갖은 활동과 더불어 우리들이 가져야 할 관심에까지 언급했다. 특히 우리의 문화재 가운데는 불교적 인기와 그 신앙의 대상이 허다하므로 이의 안식(眼識)에 그릇침이 없어야겠다. 불교의 유지(遺址) 또는 불당(佛堂) 등의 사찰지역 또한 신성(神聖)한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상의 감상(鑑賞)에 있어서도 그 경건한 모습 및 전인간(全人間)의 표현 등에 예술적 진의(眞意)와 귀중한 문화재로서의 평가에 오(誤)가 없어야 한다. 이런 것은 특별히 잘아나는 세대에 교육시킬 만한 일이다.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그 진가(眞價)를 오인(誤認)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곧 문화의 보호자인 교회의 자녀로서 큰 망신이 되겠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또한 생각나는 것은 성당을 장식하는 각종 성물(聖物)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모두 석고, 세멘트 등으로 된 것인듯 한데 도대체 얼마간 보존될 것이냐 하는데 지윽히 의심간다. 그 뿐 아니다. 그 제작 혹은 그 계보(系譜)가 분명치 않은 모조(模造)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솜씨, 채색, 크기같은 것이 훌륭하지 못하다. 이런데도 전문가들의 노력이 동원되었으면 한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신자들은 「문화재 애호」에도 솔선수범할 위치에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