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貧困) 소사가 성행되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으나 일정한 곳(地域)의 빈곤도(貧困度)를 조사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거기 과학적인 대책을 수립하기에 크게 공헌할 줄 안다.
빈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한다지만, 그것도 범위를 줄잡기에 따라서는 착잡한 것이 있겠다. 그러나 그 범위를 가령 요구호대상자에 국한한다던가, 생활구제의 손을 뻗쳐야 할 극빈자에 제한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말로 요구호대상자 또는 극빈자라 하는 것은 구호시설에 수용해야만 할 처지에 있는 자와 자조(自助)의 길을 열어주어야 할 두 갈래를 명백히 구분해야 하나 여기에는 분명한 일선(一線)이 그어져야만 한다. 서독 및 영국의 노동실업자 구제의 행정실무를 보더라도 그 한계는 엄격한 것이다.
우리 형편은 극빈자가 즉 실업자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네 실업자는 아마 <케인즈>의 이론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직업을 가졌지만 실업자와 별로 분간할 수 없는 빈곤을 겪고 있음을 본다. 이 또한 이론상으로는 일종의 실업자인 것이다. 즉 불완전취업(不完全就業) 상태에 있는 잠재(潛在) 실업자인 것이다.
이러한 빈곤은 도시와 농촌을 분간할 수 없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는 아직도 도시에서의 공업화(工業化)가 생성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와 유기적(有機的) 관계에 있어야 하는 농촌의 존립(存立)은 지극히 모호한 것이다. 한말로 경제구조(經濟構造)에 있어 후진성(後進性)이 너무나 뚜렷하다고 할까. 그 영세성(零細性)은 숫자로나 문필의 표현으로서도 다하지 못할 만하다.
속담에 가난은 나라도 못당한다고 하지만 빈곤이 빈곤을 증대시키고만 있는 기막힌 실정에 놓여있다.
정부는 방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후진각국이 다투어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최선이 장기대책(長棋對策)인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이같은 시책(施策)내지 정치적 대응책과 필히 수반될 것은 국민의 올바른 생활관(生活觀)이라고 생각된다. 혹은 후자가 선행(先行)해야만 할 일이다. 생활관은 생활의 기풍(氣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반드시 건전해야만 한다. 국민 각자의 생활하는 태도가 건실하고 실속 있는 모습이 드러날 수 있아야 한다.
최근 재건국민운동의 일부로 신생활을 지향하는 좋은 구호가 거리마다 나붙고 방송 · 강연 등 결코 그 선전이 부족하지는 않은 상 싶다. 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구정권때 해외로 나갔다가 지금 돌아와서 본다면 격세(隔世)의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스스로도 『참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모두 지난날의 타성을 깨끗이 떨어버리고 생활인의 진면목(眞面目)을 ㅊ자자는 자각에서 온 것이다. 이같이 방향만은 잡았으니 항구히 그대로 추진된다면 기어코 성과를 얻고말 것이다.
시책과 수반될 것은 국민 각자의 올바른 생활관(生活觀(이라고 했다. 생활관은 생활인의 기풍 또는 태도라고만 해서는 철저하지 못하다. 하물며 올바른 생활관에 있어서랴. 과연 옳은 생활관은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근본문제이라 하겠다.
현실을 초월한 어느 도선(道仙)의 달관(達觀)이 보편적인 생활관은 될 수 없다. 현실을 넘어서면서까지 어떤 심오(深奧)한 경지(境地)를 개척하는 그것을 대조한 말은 아니다. 우리는 가톨릭생활관에 있어서 쉽게 본뜻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교회생활은 뒤집어서 말하면 가톨릭 생활관에선(立脚) 일상생활인 것이다.
「천주」의 것과 「세살」의 것을 동시에 세납(稅納)하고 있는 우리는 현실(=자연)을 결단코 경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종목적에 도달하기에 필연코 자연(=현실)을 발판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대한 인식이 없거나 부족한 듯하다. 자칫하면 마귀=세속(世俗)=육신의 삼구(三仇)란 신심생활(信心生活) 용어에 과도히 집착해버릴 수 있다.
수도자들의 철저한 청빈(淸貧), 정결(貞潔), 순명(順命)은 일반의 신심생활에 큰 모범을 주고 동시에 초자연 세계의 존재를 확실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 때문에 수도자의 생활을 특별한 소명(召命)에 속하는 것이다.
일반은 이를 본받아 더욱 완전한 각자의 처지에 적응(適應)되는 생활관을 수립해야 한다.
완전한 가톨릭은 정치 · 경제 · 사회 · 기타 모든 방면에 더욱 행동적인 참여를 약속해준다. 우리의 빈곤문제가 겨누어 생활관에 대한 바른관념이 일반교리공부와 같은 비중으로 교육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