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국민운동은 국민적인 자각(自覺) 없이 이루어질 수 없겠다고 했다. 이 국민적인 자각은 필경 한 기풍(氣風)을 장만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기풍이란 과연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조성(造成)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말의 뜻을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가령 우리가 노상 쓰는 기분(氣分)이란 말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외어(外語)로 옮길 수 없다. 어느 학자는 이 「기분」이란 말은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 기풍이란 뜻도 이렇게 취(取)하고 싶다. ▲재건국민운동을 우렁차게 일으킬 만한 기풍을 어떻게 장만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역사에서 보는 어떤 국민운동과 비교한다는 것도 헛되지 않으리라. ▲지난달 일정하(日政下)에 소위 국민 총동원 태세(態勢)를 갖춰 본일이 있다. 물론 우리는 피동적이었었다. 그런데 그네들 일인(日人)들로 말해도 그것은 패전(敗戰)을 목전에 둔 한 「센티멘탈리즘」에 불과했다. 국가 총원이란 간판 아래 앞으로 조성(造成)해 가야만할 국민적 기풍은 그런 「세티멘탈리즘」과 같아서는 안 될 것은 더 말할 것 없으려니와 그런 입네도 내지 말 것이다. 마치 그 때를 회상(回想)하듯 하는 것이 있어서는 천만 위험한 일이다. ▲재건국민운동을 부르짖는 이런 태세(態勢)에서 각자의 행동률(行動律)이 문제된다. 우리의 행동이 더욱 실천적(實踐的)인 것에 그리고 그것이 전체사회(全體社會)와 직결(直結)되는 관계에 있어서 더욱 많은 시인(是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매우 원칙적인 표현이겠으나 이런 관계에서 활발한 행동을 일으키자는 것이 우리가 강조할 수 있는 재건국민운동에의 최대의 성의(誠意)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는 모든 이성(理性)을 회복하고 참으로 「인간」으로서 자발적으로 행동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적수(敵手)인 공산주의도 이제는 물질적 형이상학(形而上學)에 도달하고 있다. 그 정신수준(精神水準)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이와 대결할 수 있는 우리의 힘은 그 소재(所在)를 어디 두어야 하겠는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민적 기풍에 조작성(造作性)이 없어야 한다. 이런 것을 떨어 버리고 인격적으로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