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10-16일간 성청 율수성성(聿修聖省) 주관아래 제1차 성소(聖召) 국제회의가 「로오마」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보도한 바와 같다.
이 회의를 통해서 성소문제르 연구 토의하고 당면한 성소의 위기(危機)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인 것이다.
성소의 위기-. 과연 위기를 고(告)할 만큼 화급(火急)한 문제인가? 율수성성 <바레리> 추기경의 말씀대로 『만민을 가르치라』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그 실현은 오직 성소와 평행(平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직자가 부족한 것은 성소가 부족함과 전혀 같은 뜻이다. 이의 해결방도를 깊이 생각해볼만하다.
글너데 이번 국제회의에서는 성소에 관련된 문헌, 스라이드, 영화, 테레비죤, 녹음 등 기타 청소년들에게 성소에로 이끌만한 교육자료를 전시(展示)하고 각 국의 효과적인 방도를 교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들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도록 자극을 주고 환기(喚起)하는 일이 옳으냐는 것이다. 평이(平易)하게 말해서 성소의 선전을 해서 무방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상은 이런 의문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전교지방에 있으면서 아직도 많은 외국선교의 소속 성직자들의 막심한 수고로 그것도 빈약한 교세(敎勢)를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의 교세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지금의 두 배가 됐다하자. 그때 가서 외국 선교회원의 증파(增派)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가망은 없는 것이다. 현재 외국선교회에 의존할 만큼 우리의 성소는 부족한 것이요, 발전적 장래를 바라볼 때는 암담할 만큼 매마른 것이 우리의 실정인 것이다. 문제는 성소를 자극시킬 만한 선전행위가 가(可) 하냐는 것이다. 그 대답은 자명(自明)하다.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그토록 매마른 우리네 실정인데 마치 낙과(落果)를 기다리듯 둔(鈍)할 수 없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생들 가운데서 속속 소명(召命)을 입고 신학교, 수도원을 지원해 나서도록 모든 편의가 잘 보전(保全)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실정이야 말로 성소에의 옳은 계념(繫念)을 적극적으로 계몽할 만하다. 교우가정에 성직자가 나오면 그 집안의 영예인 동시에 그 소속 본당으로서도 큰 보람을 느끼고 하는 것은 훌륭한 풍습이다. 실은 성소는 온전히 그 개인이 받는 것이겠지만 이같은 영예의 보람을 그 집안과 본당에 돌리는 것은 단순한 풍습의 소치(所致)이라고 할 수 없겠다. 이것은 곧 성소에 그 집안과 본당의 협력이 얼마나 요긴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정도의 관념은 이미 서 있는 터이다.
그러낭 ㅜ리의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환경을 보살피건데 그들에게 있어 가정 및 본당은 반드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자칫하면 가정이나 본당은 그들이 단지 맹목적 순종을 지불하는 곳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바깥 사회가 던지는 추파는 격심한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바탕이 훌륭한 자녀들을 가정과 본당에서 휘잡지 못하고 바깥 조류에 떠내려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경로로 당연히 찾았어야 할 성소를 망실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요안> 23세께서는 「부라질」에서 있었던 제2차 JOC대회에 보낸 「멧세지」 가운데서 신학생들이 노동문제를 연구하라고 촉구하면서 또한 강조하기를 노동청년 가운데서 많은 성소를 입는 자가 나오기를 바라노라고 하셨다.
성하께서는 신학교에서 노동 문제를 공부하고 신부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겠으나, 노동 청년들이 바로 성소를 입는다면 더욱 철저히 노동 문제를 이해하고 지도할 자 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비단 노동에 한한 것은 아니다. 의사, 변호사, 언론인 그밖의 전문분야에서도 늦게나마 성소를 입는데로 조건이 허락는 범위에서 서품을 받을 길은 널리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성소 국제회의를 계기로 전세계 각급 수도원장 앞으로 특별기구를 요청하고 있다. 주교들은 사목교서 가운데서 동 국제회의의 성공 및 성소를 위한 특별기구를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에게 명령할 것이며 가톨릭신문 등은 이를 선전하고 동 대회의 의도(意圖)를 잘 반영하도록 율수성성에 의한 요청이 시달되었다.
앞에 지적한데로 낙과(落果)를 기다리듯 해서는 안 된다. 성소달성(達成)에의 가장 완전한 길은 기도밖에 없을 것인즉 정성으로 성소를 구하는 공동기도 행사가 실행되어야 할 줄 안다. 이는 반드시 공동으로 실해오디어야 한다. 첫째는 공동으로 더 완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겠고, 둘째는 성소에의 자극과 선전계몽을 겸하게도 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성소의 달성(達成)을 위한 최선의 방도는 기도이겠지만 동 국제회의는 성소에 관한 전문가들이 그것도 각종 각급 소속회에서 나와서 상세한 토의를 하게된 것이다. 성소에 관한 선전, 출판물 등을 어떻게 효용하겠으며 종전의 그것을 어떤 점에서 시정(是正)할 것이냐는 데까지 논급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방면에 별반 대책(對策)이 없는 우리로서는 이런 전문가들의 발언에 심심한 관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같이 전세계적으로 그 방면의 전문가를 모아서 토의하고 검토하는 소이(所以)는 그만큼 그 방도가 어려운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 본당,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의 기도와 노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귀중한 성소(聖召)를 망실하는 일이 없도록 십분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