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교계제도(敎階制度)가 확립됨에 따라 북한이 교구들은 서울대주교의 관하에 들어갔다. 즉 북한교구들은 서울대주교구의 속(屬) 교구가 된 것이다.
로마 성청은 이번 한국교계제도를 설정(設定)함에 있어 대한민국의 영토(領土)를 이남(以南)에 한(限)한 것으로 보지 않고 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승인 요건(要件)을 준수하여 대한민국의 주권과 그 판도(版圖) 이전상태인 한반도 전역(全域)에 존립(存立)하고 있는 상정(想定) 아래 그 교역(敎域)을 획정(劃定)하였다.
한국 교계제도는 대한민국의 국력(國力)이 미치고 있는 이남지역에 한한 것이 아니다. 북한땅을 전부 포함하는 통일한국에 교회의 모든 보람을 향유하는 교계제도가 실현된 것이다.
1945년 우리가 오래도록 상실했던 자유를 회복했을 때 그것은 일찌기 누려보지 못한 위대한 자유혁명으로 여겼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변혁을 겪었지만 8·15 광복(光復)의 의의(意義)를 어느 그것과 비겨서 경히 평가하기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토를분단(分斷)시키고 쏘련군 진주(進駐)를 힘입은 공산정권의 강점(强占)을 허술히 약속해준 것이었다. 우리는 8·15의 이면을 다 알지 못한다. 그 연고는 아직도 시간적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외교비밀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혁명과 국토절단(切斷)의 두 사실만은 뼈저리게 분명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 자주독립을 제일먼저 승인해온 것은 바티깐 성청이었다. 성청은 대한민국에 외교사절(外交使節)을 주재시키고 성청과 가장 긴밀한 우호관계에 있는 주권국가에 대한 외교적 존경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계제도 설정에 즈음하여 그 교역(敎域)을 북한까지 포함시킨 것은 또한번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를 선양(宣揚)한 것이다. 바티깐 성청은 과연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앞에 지적한 사실만으로서도 능히 지실하고 남을 만하다. 오직 남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성청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북한교구들이 대목구(代牧區)에서 완전한 본교구로 승격된 것은 외견(外見)만을 결정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서울 바오로 노(盧基南) 대주교께서는 북한교구들이 본교구로 승격된 것을 경하하는 동시에 지금은 잠정적으로 서울대주교구에 예속되고 있으나 차차 국토의 통일을 얻어 더 큰 발전을 바랄 수 있어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현하 침묵의 교회를 망각되다싶이 한 실정을 심히 우려하면서 한편 북한에도 대주교구가 설립될 날이 와야하겠음을 시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전 정부는 이북 5도지사(道知事)를 임명발령했었는데 그분들이 더욱 효과있는 반공(反共) 지도를 추진하게 된다고 하고 있음을 들었다.
지금 북한에는 공산교육과 그 생활에 철저히 젖어버린 한 세대(世代)가 성장했다. 그들은 공산세계만을 알고 있다.
그밖의 것은 단순히 모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밖의 것은 적(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적은 자기들의 질서(秩序)를 위협하고 있는 존재요 그 대상인 것이다. 그들이 공산질서를 수립하는 방법의 하나로 소위 철의 장막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철의 장막이란 것도 날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그 안의 사정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한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는 그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꼭같은 「이데올르기」가 그들의 심장처럼 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 8·15처럼 우리의 국토통일이 곧 실현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행정력까지도 그 방방곡곡에 미쳐졋다고 하자. 과연 그들의 제2의 심장같이 된 「이데올르기」를 뗄 수 있겠는가?
민중의 공산사상을 차압(差押)하듯 강권을 발동해서 압수하고 소각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했을 때 그대신 무엇을 줄 수 있고또 줘야하는가. 그러할 능력은 있는가. 심각히 생각하고 준비할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이북에 침묵의 교회를 버려둔 채로 한국교계설정의 역사적 대경축전을 맞이하고 있다. 고향산천 혹은 부모형제까지 북쪽에 두고 항상 그곳을 그리궈하고 있는 북한출신 성직자 평신자들의 가슴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개가 복받쳐 오르리라. 그러나 북한 모든 교구가 동등하게 본교구로 승격되었고 교황 요안 23세 성하께서는 그 주교들의 임명장까지 보내고 있는 마당에 북한교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보다 현명한 도량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가톨릭교계제도 확립은 우리의 진정한 정신적 국토통일을 기약해 주는 동시에 북한에 건재(健在)하는 박해받는 신앙을 증거하며 북한출신 신자들을 더욱 분발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