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962년 6월 29일 교황 요안 23세 성하의 한국가톨릭교계제도(敎階制度)의 설정(設定)을 명령하시는 교황칙령(勅令) 「페르탈레 에반젤리 세멘」을 서울대주교구좌(座) 명동 무염시태 대성당에서 주한교황사절에 의하여 엄숙히 집행되는 날이다.
바티깐 소식통이 지난 3월 24일 이 역사적인 성청의 결정을 발표했을 즈음 우리는 비록 수시간의 간격을 두고 그 소식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의의(意義)를 단번에 다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통신기사만으로 얻은 일반신자간의 인상은 주교세분이 대주교로만 승진했는가 하는 정도이기도 했다.
한국에 교회의 교계제도가 확립된다는 것은 교회의 교정권(敎政權)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주교구와 교구에 의한 분명한 계급적인 교역(敎域)을 수립하고 대주교구의 주교는 대주교로 각 교구의 주교는 그 지방 본주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종전의 대목(代牧) 또는 지목(知牧)하는 준(准) 교구의 형태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경험이나 지적 수준이 자치능력을 구비(具備)한 고장에서는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하는 말하자면 제도의 확립이라고 표형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위(國威)가 날로 성장하고 선양(宣揚)되는 도상에 있음과 병행하는 교권(敎權)상의 자주적 기구(機構)를 설정하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면목을 으젓이 세웠다고 할 수도 있다.
역사상의 한 극적 장면이라기에는 너무나 무참했던 유혈의 대교난들은 고사하고 6·25의 적침(赤侵)은 교회의 인명 재산을 아마 그들은 재기(再起)의 여지를 주지 않을만큼 약탈 파괴했던 것이다. 그들은 교회소재지를 마치 공격목표와 같이 서둘렀다. 그런 것을 이루 붓으로 다 그릴 수 있으랴.
그러나 진전(進展)하는 교회는 근 5백년간의 신자증가 만도 2배를 능가하고 있다. 그 비율은 세계 제1위를 과시한 적도 있다. 교육, 자선사업 그리고 출판 문화 및 언론분야에 있어서도 신자증가의 비율과 맞서지는 못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시현해왔다.
무엇보다 성소자의 증가와 자치(自致)할 수 있는 본당이 늘어가고 있음에 주목할 만하다. 한국교회는 제도상으로는 완전한 교계제도를 확립하고 있으나 아직은 성청 포교성성(布敎聖省)에 속하고 있는데 그 연고는 오직 경제적인 이유뿐이다. 가령 어느 신생공화국(新生共和國)의 헌법(憲法)과 같이 비록 헌법상의 국가체제가 수립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참할만한 요건(要件)은 허다한 것이며 또한 요원한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법상의 자치제도가 실현되었을지라도 명실공히 그 자주성(自主性)을 향유하기에는 거기 부수되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 첫단계는 각 본당의 자립에 있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본당을 중심으로 우선 경제적인 자립에 배전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주교구와 교구에 있어서도 지금은 지극히 근본적인 모법(母法)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듯한 단계에 있을 뿐이다. 과감히 현실에 직면(直面)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책과 방침을 실천해가면서 또한 국제적으로 연결해 가야하는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경축일색으로 감싸인 명동 대주교좌 구내에는 혁명정부의 수뇌 고관 그리고 각국 외교대표 및 저명인사들만 1천여명이 참렬한 가운데 역사적 그 첫 순간을 장식하는 3대 주교의 입당(入堂) 행렬을 보는 겨레의 성직자 평신자들의 가슴은 벅차 넘치는 것이었다. 마치 찬란한 교회사(敎會史)의 한 장면을 목도한 자의 가격을 어찌할 수 없는 같기도 하다. 이런 것을 말마디로는 영광이라 하는 상 싶다. 그렇다. 영광을 입은 교회 그리고 그 일원이 되는 위대한 날을 우리가 다같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교황 성하로부터 수여되는 각 대주교 주교임명령에 이어 대주교위에 피선된 서울 바오로 노(盧基南) 대주교 대구 서(徐正吉) 대주교 그리고 광주 헨리 현 대주교 3대주교 개인 앞으로 전달되는 대주교휘장 「빨리움」 수여식을 고비로 경축을 겸한 감사 대례미사가 이번 한국 교계설정 경축식전의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의 확립은 대주교 및 본 자치교구 주교위에 승격되는 큰 영광인 동시에 이 국가 민족에게 진리와 신앙을 전파하는 역사적 대출발을 기약한 것이니 오늘의 영광을 온누리에 차도록 분여할 것이며 이날은 한국교회사에 길이 기념할 경축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