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1월27일) 세계 나병의 날을 맞이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세계적인 기념일은 전세계 1천5백만 「한센」씨병(나환)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에 인류 공동의 동정과 관심을 보내기로 금년은 제10회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 공동의 동정과 관심은 이 병마를 조속히 구축하고 동시에 이 병에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에 물심양면의 도움을 베풀자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보다 여기 주목해야 할 연고는 세계 어느 고장에 비겨 거의 으뜸가는 환자지대(患者地帶)를 가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다.
먼저 이 병에 대한 일반적 인식 및 태도가 최근 그 방면의 혁명적인 의료의 발달로써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병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의 인식이 극히 부족하고 또 그 태도가 못마땅한 것은 더욱 고칠 수 없는 병폐인가 한다. 비록 일반의 인식 부족이 이토록 심할지라도 나병 치료에 더한층 박차를 가해가고 있는 밝은 서광 앞에 그것은 한갖 시간적 문제이겠다.
나병 근치에 근본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조기치료(早期治療)인 것이다. 발병현상이 시작될 때 곧 치료한다면 대개는 6개월 이내에 완치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병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그러하겠지만 이병에 있어서는 조기치료가 엄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 조기 발견이란 물론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 달려있다. 그 조기발견 그리고 그 치료가 긴요하다면 거기 가능한 대책을 세우고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여기 두 개의 애로가 있는 듯 하다. 그 하나는 광범위한 의료 기술의 문제이다. 이의 전문의(專門醫)가 아니고서는 조기진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단 이 병만이 아니라 일반병에 있어서도 전문의의 확실한 진단이 요청되는 사저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그 때문에 일반의사들이 여기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전문의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마 이것은 나병조기 발견의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일반 건강진단이나 그밖의 진단의 기회에 모든 의사들은 최선의 주의로 여기 협력하라 수 있겠다. 이 일을 추진할 만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그 활동을 뒷받침 할 만한 강력한 법적조치도 수립되어야 한다.
둘째는 일반의 협력이다. 우리는 이 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못 가졌기 때문에 병에 대한 정확한 치료보다 환자의 체모와 사람들간에 오르내리는 말썽을 더 중히 여기는 그 병같은 고질을 가지고 있다. 병은 자랑해야 된다는 옛말과 같이 자기 병을 다스리기에 어찌 체면과 말썽을 가릴 수 있겠는가.
구라(救癩)에 종사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부탁하는 바는 재가(在家) 환자와 그 가족들의 미신(迷信)같은 고루한 정신을 박차버려 달라는 것이다.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는 병을 정지시키는 치료의 길이 매우 곤란하고 또 정지시켰다 할지라도 불구(不具)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고 한다.
나병을 치료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기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게 이같은 극히 상식적이요 초보적인 계몽이 더욱 필요한 것은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적인 관심과 국민적인 성의를 가지고 나병 구축에 국민적인 역량을 총동원할 긴요한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 당국 및 종교기관의 구라활동에만 의존해서 이 국가의 문제요 민족의 과제인 이 나병구축을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런 생각이 곧 오늘 나병의 성황을 방비치 못한 요인이 되었음을 깊이 반성할 일이다.
한국에서의 구라사업은 구빈(救貧) 사업을 겸한 것이다. 종전 환자 수용을(실은 收容이란 말부터 못마땅 하겠지만) 관권으로 강요하고 강압의 대우를 감행하던 낡은 관념부터 깨끗이 없애야 한다. 그같은 강압의 법적인 근거도 없으려니와 민주, 자유 및 복지(福祉)를 표방하는 국가적 이념(理念)과도 전혀 상치되는 부당한 관념이다.
가톨릭교회는 물자와 귀한 인원을 동원하여 이 사업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증명하고 있거니와 그러나 이 사업이 단지 교회를 선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목표는 어디까지나 가능한 해결의 방도를 얻고 필경은 치료와 환자 집단의 자활(自活)을 달성하는 숭고한 인도적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는 것이다. 당장에 국민적 역량을 이에 발휘할 수는 없을지라도 만일 인류 및 민족에의 일편의 공동의식(共同意識)이 있다면 큰 관심과 동정을 모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