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가톨릭교계제도(敎階制度)의 설정발표 및 그 설정식을 거행하게 됨을 계기로 해서 신문, 라디오 기타 매스콤들이 중대한 관심을 표시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분량의 보도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교회와 직접 간겁의 관련이 있는 계통의 고간에서는 그 의의(意義) 마저 강조하기에 최대의 성의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같은 관심내지 성의와는 별도로 몇가지 고언(告言)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또한 미리 양해를 구해두거니와 교회와 및 교계설정의 본 뜻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일반적인 인식이 만족할만하지 못했었고 따라서 일반언론기관으로서는 있을 수 있는 오보(誤報)를 범했다고 할까, 혹은 그 자체는 오보이지만 불이해(不理解)로조차 초래된 결과인 것을 이해할만 하다. 달리 말하면 오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인식을 구하고자 할 뿐이다.
그 첫째는 용어에 관한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도 만일 가톨릭 교회가 많은 고유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초보적인 관념만 있다면 그같은 오기(誤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는 2천5백만 대한민국 총인구의 2%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2%를 상대로 신문기사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널리 다 알아닫는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음을 더 길게 말할 것 없다.
그러면서도 용어(用語)의 직능(職能)을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줄 안다. 가령 경제생활은 아무도 거기서 분리되지 못한다. 경제생활은 중요한 인간생활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事實)을 일단 정리(整理)하여 경제학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경제자체를 설명할때는 그 용어 즉 경제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용어(用語) 사용에 불편이 없는 선진사회에서는 별반 문제조차 되지 않는 것을 구태여 지저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
또한 현대는 국제사회(國際社會)를 지향하고 있는 때이다. 자유세계와 특히 그 중요도시는 국제적인 긴밀한 우대를 기하고자 하고 있다. 거기서 발간되는 신문들을 비롯하여 보다 참신한 감각을 가지고자 하는 매스콤들은 가능한한 국제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그리스도교 용어사용에 세심한 주의를 경주한다는 것은 결코 무의미 하지 않을줄 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무슨 국제적 사투리 비슷한 말을 기사화(記事化)한다면 사회교육적 견지에서 볼 때 심히 못마땅한 일이다.
그 해결의 길은 더욱 손쉽다. 사용하기에 의심가는 것이 있을 때 교회에 문의해온다면 즉시 명백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용어보다 기사 내용의 잘못된 전달은 한층 더 중대하다. 가령 이번 한국 가톨릭 교계제 시행(施行)에 관한 것으로 수도에서 발간되는 어느 한 신문도 정확성을 기한 것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교계제도를 표방하면서 내용은 3주교가 대주교로 승진되었다는 것만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 밖에 많은 설명 또는 보도를 하고 잇으나 신문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무엇이 어찌된 것인지를 알 수 없게 한 결과를 내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책임있는 기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회에 반성할 일이 많을 줄 안다. 신문 라디오 TV 그리고 지도적 간행물 등이 일상생활에 그야말로 지배적 위치에 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대중의 눈 · 귀 · 입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신생활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교회는 막대한 비용을 던져 교회출판에 힘을 들이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그 발전책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병행시켜서 실천할 일은 교회바깥 매스콤 안팎에다가 그값(價値)을 정해주며 또한 바른 진로(進路)로 향하게 해줄만한 힘의 가세(加勢) 떠는 작용(作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막상 실천에 옮기자면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많은 기술과 경험이 요청된다. 퍽 쉬운 일일 것 같으면서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 일에 속한다. 따라서 이 일에 기술과 경험이 있는 분을 가끔 이동시키고 하는 것은 중대한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는(知識) 것만으로는 일이 잘 추진 안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일을 추진시킬만한 조직이 있어야겠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어디서나 최선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