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육 · 해 · 공군 3군 내에 가톨릭 군종제도가 들어선지 십여성상을 지냈다. 이는 가톨릭의 군종제도인 동시에 군의 편제(編制)에 속하는 일이므로 숫자를 열거하여 그 실정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
그러나 평편히 듣는 바를 종합하면 근년 가톨릭대학 출신의 젊은 군종신부들이 대거 입대하여 참신, 기예(氣銳) 그리고 멸사(滅私)의 군종활동을 전개하여 비록 숫적으론 영세이나 군상하의 비상한 관심과 존경을 모으고 있으며 일반사회의 지대한 신뢰(信賴)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현위치만을 근기있게 지속해간다고 할지라도 풍요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60만 대군을 교역(敎役)으로 하는 군종사업의 중대성을 새삼 늘어놓는다는 것은 부질없을 뿐이다. 그같은 중대성은 곧 오늘의 기반을 닦아 놓게된 것이 아닐까. 그 기반이라고 하는 것은 능히 타의 조경과 신임을 모으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價値)요 힘(能力)이라고 지적하는 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값있는 전통을 장만했다는 것만으로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군종사업의 중대성 내지 필요성은 더욱 가중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창설 사업에 피치 못할 애로를 겪고 혹은 그 방도(方途)를 세우기에만 몰념해 왔는지 모른다.
바꿔서 말하면 가톨릭적 전통과 기반을 닦는 극히 근본적인 일만을 해왓었다고 할 수 있다. 식물에 비겨서 말한다면 밭을 갈아 시비(施肥)한 뒤 씨를 뿌려 수고와 애정을 보태면서 가꾸어 온거와 같다. 그것이 참으로 휼륭하게 성장한 것을 눈으로 인정할 수 있게된 것이다.
지금 군내에서의 영세예비를 위한 준비기간 및 교양수준은 일반본당의 그것과 전혀 동일하다. 군대생활이라는 많은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영세준비교육을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엇은 군인영세예비자 본인의 공고한 신앙의 장래를 위한 것이며 교회가 명하는 당연한 처치인 것이다.
군인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교회지식에 대한 교양도 상당한 것을 인증할 수 있다. 그것은 큰 힘이다. 종군신부의 독력으로 교회 및 가톨릭 · 악숀이 수행될 수 없다. 그분들이 군대생활과 그밖의 모든 생활면에 있어서 마땅한 희생을 실천함으로서만 그 실(實)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군인들은 복잡한 이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사려구(美辭麗句)를 나열하는 긴 설교나 충고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치레로 통하는 친전의 손도 단순 강직한 군인들 앞에는 별로 큰 뜻을 지니지 못한다. 오직 진리(眞理)를 수호하기에는 목숨을 바칠 수 있었고 의(義) 아닌 영화(榮華)이면 초개같이 여기는 가톨릭 순혈(殉血)의 정신은 군인정신과 일맥상통한 끝에 많은 공감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한다.
본래 군대는 후방의 지원(支援)을 필요로 한다. 지원 없이 군대는 앞서나갈 수 없다. 이와 똑같은 이유로 우리 군종사업에도 반드시 많은 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신자들간에 종군신부를 후원하는 열과 성의가 대단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와서 흐지부지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신자들이 종군신부들을 후원하는 실적이 대단히 미약함을 솔직히 지적하는 바이다.
우리는 귀한 아들, 동생들을 군대에 보내고서 그들의 영신사업을 노상 걱정하고 있다. 이와같이 사제품을 갓받은 우리의 많은 젊고 유능한 성직자들을 군대에 ㅂ내고 그들의 막중한 사목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그같은 걱정에 상응할만한 무슨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군인들은 엄격한 기율에 의해 행동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의 자기완성을 심각히 생각하고 있다. 그 방도로서 가령 많은 독서(讀書)를 하고있는데 이것 역시 젊은 군인들의 특징인 것이다 지금 실정으로서는 종군신부가 주재하는 부대에서도 얼마간의 읽을만한 책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책을 달라는 호소와 책을 보내자는 소리 이 또한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전국 각 본당 각 학생회 레지오 마리에 JOC 그밖에 모든 가톨릭 악숀단체에 간절히 호소한다. 종군신부들을 후원할 수 있는 적절한 방도를 곧 수립하도록.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강력한 방공군(防空軍)을 유지해가야 하는 우리의 실정은 평화시의 안일을 탐하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여러 용공(容共) 중립지역의 실태가 보다 잘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신자적 기백과 민족적 양심과 양식으로 먼저 물질적으로 종군 신부들을 지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