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한번 가고싶다. 특히 무더운 여름이면 시골생각에 사무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골이 없다.
나의 시골은 저 -이북 땅에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로부터 『시골 좀 다녀와야겠다』든가 『시골엘 다녀왔다』는 말을 들을때면, 뭉클 치밀어 오르는 향수(鄕愁)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도 한번 시골엘 다녀왔으면….』 처절한 생각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의 시골」은 황해도(黃海道)에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은 -
그리고 내가 정녕 가보고 싶은 시골은 -
머리속에 황해도지도(黃海道地圖)를 펼쳐놓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곳이고, 또 철로(鐵路)를 따라 서쪽으로 내려갈라치면 얼마든지 있다.
여름- 그것도 지독히 더운 여름이면 나의 기억을 생생하게 해주고 나를 못살도록 만들어 버리는 시골이다.
때때로 가볼 수 없는 시골을 공상(空想)의 세계에서 가보곤 하는 것이 나로서는 퍽 유쾌하다.
사리원(沙里院)에서 달캉달캉하는 기차(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小型汽車)를 타고 서쪽으로 쪽 뻗어가면 재령(載寧) 나무릿벌이 지평선이 안보일 정도로 요원하게 전개된다. 중학시절에 근로봉사라 해서 몇번인가 모내기를 하던 곳… 나의 추억은 여기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달캉달캉하는 기차의 종착역인 장연(長淵)- 그곳에서 「뻐스」로 더 가면 몽금포가 있고 몽금포 못미쳐 용연(龍淵)이란 곳이 있다. 여기는 우리집 외가가 있던 곳이다.
사시절 물이 콸콸 지하에서 샘솟고 도시 마를 줄 모르는 연못 -그곳이 「용연」이다. 이 주변에서 「용연」과 그앞에 누엿누엿 산허리가 굽어진 무성한 「불타산」의 전설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으며 곧잘 신기해 하던 동화의 세계가 있었다.
상념은 여기에서 껑충 뛰어서 해주(海州)로 내닫는다.
「해주」는 나의 꿈많던 소년시대의 요람지다. 다시 없이 깨끗한 거리 -시내를 마치 포옹이라도 해주는 북쪽에 우뚝 솟은 수양산에 올라가면 「광석개」라는 시내가 우리를 얼마든지 시원하게 해주었고 꽈배기 엿을 둬서너가락 사들고 「百世淸風」 비앞을 지나 산허리에 가앉으면 저멀리 「용당포」의 항구와 서해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을 우리는 뿌엿한 가슴으로 보아왔다.
그리고 나무그늘에 누워 곧잘 소월(素月)의 시를 뇌까리던 꿈의 세계였다.
뿐인가 -여름이면 우리는 곧잘 장수산(長壽山)엘 가곤했다. 「황해금강」이라고까지 불리우는 장수산… 기암절벽 사이에 「달암절」이라는 암자가 깊은 산허리쪽에 달랑하게 매달려(그렇게 보인다)있다.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쫄쫄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먹고서는 장사가 된듯 조아만 하던 희열의 세계-
무딘 붓으로 나의 시골을 말하는 것은 역시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시골은 서우역에서 차표만 끊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자꾸만 든다. 넉넉하게 시간은 못낸다고 하더라도 주말에 훌쩍 다녀오고 싶은 시골이다.
더우기 이처럼 무더운 때면 나의 시골은 얼마나 시원하고 멋있는 곳이냐… 한참동안 공상의 꼬리를 붙잡고 시골생각을 하다보면 화씨9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잠시 잊을 때가 있다.
정말 가보고 싶은 시골이다.
金泰運(경향신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