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사순절 제1주일이구나. 성로신공을 했더니 무릎이 아프다.
너의 무릎도 성을 내니? 만일 내가 일년 내 성로신공을 했던들 익숙하였을걸. 하여간 그건 「파띠마」의 성모님께 바치는 작은 보속이지. 지난 주일에 성영 21의 여섯째 구절에서 중단했지. 지금 7절부터 계속하마.
『⑦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로소이다. 사람들이 모욕하고 민중이 경천히 하는 자로소이다. ⑧나를 보는 자들은 모두 나를 비웃고 입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⑨「주께 의탁하니 그를 자유롭게 하실지어다. 그를 사랑하시니 그를 빼내주실 지어다」하나이다』
이 성영이 『수난의 예언』이라 불렸으니 이 구절이 성서에 발견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이 8절9절을 마두 복음 27장 39절과 43절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그토록 괴로워하셨을 때 그에게 그토록 비열한 말을 했구나. 수녀님은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거듭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 시절 성 금요일날과 꼭같이 악한 사람으로부터 조롱당하시고 웃음거리가 되시는구나.
수녀님은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따르면 그가 당하신 것과 같은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여기 대한 조그마한 경험을 하나 했단다.
시내에 멋진 영화가 왔는데 아랫동리 친구가 나더러 그걸 보러 가자는구나.
나는 사순절 동안은 안 간다고 했다. 만일 우리가 주일날 오후의 성로신공을 까먹고 같이 가면 우리 어머니에게는 내가 극장에 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면 되고, 관람료는 자기가 내겠다는 구나. 그리고 또 월요일날은 수녀님께 갔다줄 변명의 편지를 그의 언니가 써 줄 수 있데.
그는 그 영화가 다시 돌아오지 많는다고 하며 또 주일은 사순절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영화 볼 수 있는 날은 주일이기 때문에 만일 내가 사순절동안 주일날 가게되면 희생이 아니된다고 말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기까지 영화가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는 나를 『열심한 아녜스』라고 빈정거렸어. 나는 양보하지 않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해. 그동안 쭉 조롱당한 것이 마음 아팠으나 지금 성영 21장 12절을 읽으니 마음이 누그러진다.
『내가 고민하오니 당신은 나에게서 멀리서 계시지 마옵소서. 도웁는 자 없사오니 가까이 계셔주소서』
예수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느끼고 있다. 나를 위해 기구해 주렴. 나도 우리가 이 사순절에 우리의 의견을 고집하여 양복하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구하마. 요즘 너의 호수천신과 잘 사귀고 있니? 안녕.
아녜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