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소리도 없이 온다』
누가 이런 글귀를 썼다고 하자. 아마 이 사람의 마음 속엔 눈물이 오고 있을 것이다. 白樂天의 시구에 『所以陰雨中, 經旬不出舍』(그러니까 음산한 비속에서 열흘이나 집을 나서지 않고도 배긴다)라는 것이 있는데 「陰雨」가 바로 소리 없는 비다.
비는 소리를 더불어야 좋다. 더구나 여름의 비는.
이미 그 빛을 더 푸르게 한 버들가지 없고, 그 빛을 더 검게 할 숲이 없는 바에는 풀잎을 추기는 소리만이라도 들려야 비 오는 양 답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비 소리, 유리창을 두드리는 비소리에 마음의 눈물은 가시고 『땀은 플러 아래땅에, 알알이 모두가 辛苦』라는 苦役을 치루는데 새 기운을 얻으리라.
한번은 바다에서 군함을 타고 비를 만났다. 소리없는 비였다. 그랬더니 비가 소리없는 것이 아니라 파도가 비 소리를 삼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배 안에서 누워 비를 삼키는 파돗소리는 한층 거창하였다.
어려서 본 新派演劇에 『5月雨』라는 것이 있었다. 金小浪과 그의 아내 馬豪政의 主演이다. 最終場面에서 어린애를 죽인 馬豪政이 巡査인 金小浪에게 묶여간다. 때마침 5月의 소나기가 떨어진다. 巡査는 들고있던 紙雨傘을 편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한참나고, 舞臺는 溶暗一幕이 내리었다. 이 비는 지금과 같이 제법 幕 뒤의 音響效果가 있는 것도 아니요 단지 舞臺 꼭대기에 사람이 기어 올라가 팥알을 고루 쏟아붓는 것인데, 어찌 실감이 나는지 몰랐다. 팥알이 우산 기름 겨른 종이에 부딪히는 소리, 이것이 바로 5월의 비로린가 느낄 정도였다.
팥이 비소리 효과에 이용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디오 · 드라마의 비소리는 팥알을 일본부채 끝에 실로 매어 달고 부채를 요동하면 그것이 완연히 비소리로 들려나온다. 그러나 좀더 정성을 들인 音響效果라면 정말 비오는 것을 갖가지를 녹음했다가 장면에 맞춰서 내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람을 탄 비와 보슬비가 다르고, 빗줄기의 굵기와 가늘기에 따라 다르고, 그것이 부딪히는 물체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양철지붕이나 기와에 떨어지는 비, 나뭇잎을 때리는 비, 진구렁에 내리는 비, 또 처음 내릴 때와 나중에 물이 분 뒤에 내리는 비는 각각 소리가 다르다.
이런 갖가지 비소리를 녹음해두었다가 저갑하게 드라마에 쓰는 것도 좋겠고, 지난번처럼 몹씨 가물었을 때는 「비소리특집」 방송쯤 나올만도 하였다.
비소리는 듣기만 해서 좋을 뿐더러 비소리를 들어가면서 정다운 이와 속사기는 맛도 과히 언찮지 않다. 비소리에 휘말려 단둘이 속사기는 말이 남에게 들릴 까닭이 없으며 목소리가 뉴난히 은근한 법니다.
아무리 비소리가 좋다 한들 며칠을 두고 비소리만 듣자면 구중중해서 못견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비가 싹 개여서 느끼는 상쾌미 또한 비의 덕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경우 「苦盡甘來」라는 말이 적당하겠는데 비를 거친 太陽의 고마움과 비에 씻긴 공기의 맑음이 얼마나 고마운가. 비소리 그치거든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라.
趙豊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