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싫은데 여름은 또 여름대로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차미(참외) 때문이다. 차미를 먹을 때마다 여름은 사철중 제일 좋고 향기로운 계절이라고 나는 단정하곤 한다. 어쩌면 차미는 이렇게도 맛있을까. 그리고 또 이처럼 향기로울 수가 있을까.
나는 어릴때 어머니가 차미 껍질 깍는 동안을 참을 수가 없어서 마냥 그 깎은 차미껍질을 집어먹곤 하였다. 왜 차미껍질을 벗겨야 하는지 그때 내가 느꼈던 불만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난다. 더구나 그 속에 맛있는 차미속을 모두 빼버리는 그 칼 끝의 잔인하에는 대개 울음으로 항거했었으나 예외없이 깎고 훑어진 차미로 만족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도 여러쪼각으로 나누어진 한부분으로.
그때는 통채로 먹을 수 있는 차미가 얼마나 소원이였던지 모른다. 윗꼭지를 쓱 자르면 붉은 빛갈을 그린 차미. 그러나 붉은 차미의 속은 그리 맛있는 편이 아니었다. 속이 맛있기로는 노랑 차미다. 노랑차미는 익으면서 살이 눈덩이처럼 희다. 그런 것일수록 윗꼭지를 잘라보면 약간 붉은 빛갈이 있다. 무르익은 상태다. 이때 살과 속의 맛은 그만이다. 손과 코 그리고 팔꿈치, 가슴, 발까지 차미물과 씨로서 목강한다. 차미의 삼매경(三昧境)이란 이런 때를 두고 말할 것이다.
여하튼 나는 어려서부터 차미를 고르는데 흥미가 있었다.
한손에 차미를 드고 냄새를 맡으면서 손가락으로 튀딘다. 향기와 음향을 들어보는 것인데 이것은 어른들에서 배운 방법으로서 이렇게 해서 고른 차미는 그리 멋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엣날부터의 수법은 우선 그 차미 밑꼭지를 보는 것이다. 제대로 익은 것이면 꼭지가 완전히 떨어져서 차미 밑에 깨끗이 무늬까지 보인다. 그런 것이면 한손으로 그것을 들어추겨본다.
무게의 측정법이다. 나의 추리는 그 무게를 통하여 차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크기와 무게의 비례, 그리고 육감, 그래서 괜찮은 것이면 마지막으로 그 차미 장수의 상식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인사 정도로 코에 대보는 것이 대강 순서이다.
물론 거의 예외없이 단 차미를 골라낸다. 혹 귀뚜라미가 먹은 것이 참고가 될 때도 있으나 원체 귀뚜라미의 습성이 왈가닥이어서 닥치는대로 해치니까 그것에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이상의 어려서부터의 내가 써온 차미 선택의 비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체험이 있어야 한다. 설명만으로는 안되는 전문가적인 감(感)이 있ㅇ야 한다는 말이다. 곧 여기에 나의 자랑이 있다고 으시댄다. 그런데 작년은 차미계절에 장마에서 골라온 것이 모두 오이였다. 통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이때문이었다. 더구나 금년 차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 달아서 둔한 식모가 아무렇게나 사와도 모두 다니 별로 나의 솜씨가 빛날 수도 없었고….
여하튼 애들에게 차미를 깎아 주려면 그놈들이 껍질을 곧장 주어 먹는 것을 말려야 하구.
차미 속을 빼버린다고 울고 불고 하면 옛날 내 듣던 그말대로 『씨를 먹으면 배아파 죽어요…』 이렇게 믿지 않는 말을 해야 하구. 그리고 깎으면서 한입씩 베어먹는 그 향기같은 것이 옛날 그때와 오늘 이 잠시 뒤범벅을 이루게 한다. 차미의 맛은 옛날과 연결되는 그 향기가 있다.
趙東華(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