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JOC(가톨릭노동청년회) 창설 제4주년(11월 17일) 기념을 겸한 전국평의회가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4년이란 세월이 대단할 것은 없다. 4년간 걸려서 무엇을 성취했다면 조숙(早熟)했다는 인상을 줄 수는 있어도 치밀하고 단단한 기틀을 잡았으리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국 JOC는 그간 5개교구에서의 교구결성을 완성했고 예비회원을 포함하는 2천여명 회원을 확보했으며 밖으로도 1960년 3월에는 마닐라대회에 참석했고 다시 1961년 11월에는 부라질 「리오」시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한국교회 및 대한민국의 국위(國威)를 크게 선양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JOC 국제기구(機構)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다른 90개국과 동등한 회원국이 되었다.
한국 JOC 4년간의 각종 업적을 터무니없이 평가하거나 찬사를 길게 덧붙이자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한국 JOC의 성장이 우량아(優良兒) 같은 모습인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세밀히 관찰해 볼만한 몇가지 이유(혹은 조건)가 있을 것이다 .종래 경향 지방을 막론하고 각 본당에 청년조직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청년들의 조직이 활발한 곳은 본당 안에 활기(活氣)가 감돌았었다. 청년들의 활동이 없는 곳은 마치 동체(동體)를 잃은 물고기처럼 도무지 씩씩한 기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침체(沈滯)해 갔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의 모임이란 것은 변천무상한 것이었다고 하면 좀 과한 표현이라 할른지. 어느때는 열성있는 아무 아무게가 있어 잘 되었다가 그들 몇분이 딴곳으로 전출 한다든가 해서 없데되면 또한번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청년들의 정렬마을 규합하면 청년들의 모임은 성립이 되는 줄 생각하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성격이 뚜렷치 못한 그 모임을 꾸려갔던 것이다 이런 실패담은 흔히 듣는 일이다.
이와는 달리 JOC운동이 착실한 기반을 닦아가고 있는 것은 첫째 JOC운동은 션실적이요 당면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있다. 둘째 그 당면한 목표에서 오는 모임의 성격이 분명하다. 셋째 많은 경험을 살린 고도의 조직기술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JOC운동을 과감히 전개시켜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즉 노동사태(勞動事態)에 주목할 일이다. JOC운동은 진정한 의미로 청년들의 가톨릭노동운동인 것이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단순히 노동조합의 방식을 연상하기 쉽다. 노동조합은 쉽게 정치성을 띠거나 아니면, 좌익적 이데오르기의 제물(祭物)이 될 수 있었다. JOC의 노동운동은 최선의 의미의 인간운동을 겸한 것이다. 인간의 값은 오직 종교적 가치로서만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만인 순수한 노동운동을 강조한다면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자격과 힘을 구비한 것은 곧 JOC운동인 줄 알 수 있을 것이다.
꼬 한가지 JOC운동이 건전히 발전한 연구는 국제적으로 연결된 데 있다. 유엔산하에 ILO가 국제노동사회에 어떤 직능을 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가톨릭 악숀단체가 국제기구를 완성해두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JOC는 최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의 JOC 발전도 주목할만한 것이다.
50만 신자를 가진 한국가톨릭의 평신자 사도직 활동은 아직도 만족할만한 것이 못된다.
신자증가율이 높은 반면에 그 안에 건전한 조직활동이 미약한 것은 한국가톨릭 전체의 모든 수준이 적절한 선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사실 그러헤 저하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도 한국 JOC는 건전한 발전을 계속해가야 한다. JOC는 엄정한 가톨릭 평신자의 사도직 활동인 고로 어떤 외부의 감시나 제한을 받을 수 없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회단체에 의한 단체활동과 동일시 하는 오인(誤認)을 받을 이유는 추호도 없으며 또한 없어야만 할 일이다. 이점은 이난 4년간의 JOC 업적 및 활동상황이 충분히 입증해 줄 것이다.
그리고 한국 JOC는 전반적인 계몽과 지방조직에 한층더 기획성을 지녀야 한다. 계몽을 위주로 하고 그 성과를 위해서는 다른 활동을 임시 보류해도 좋을 것이다. 지방조직에 필요한 연락 접촉에도 가능한 동원을 강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