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수재 비보는 온겨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날(8월 27일) 하오3시경부터 쏙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밤중부터는 밤알만큼씩 굵은 비방울을 무려 6시간을 계속 하는 통에 순천시내를 흐르는 동천(東川) 본류가 세곳의 둑을 터뜨렸다. 참, 눈깜짝할 사이에 순천시의 대부분을 삼키고 두시간만에 처절한 비극은 막을 내렷다. 신문지상에 나타난 피해상항만도 사망 159명 실종 77명 가옥피해 1천9백36호 전답유실 4백정보에 달한다. 이 숫자는 수재직후에 발표된 것으로 아마 이의 3배게 도달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순천시는 시가지 중심지인 우체국 건물만이 섬처럼 우뚝 서있고 1만여명이 수재민들이 오직 구호에 의존하며 방황하고 있다. 작년 7월의 영주와 남원 효기리(孝基里)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참극인 것은 피해상황이 그대로 설명해줄 뿐이다. 정부에서는 수해대책위를 구성하고 긴급구호 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이에 호응 각 신문사에서도 거족적인 구호금품을 모집하고 있다. 서울 바오로 노(盧基南) 대주교께서는 순천 수재민 구호를 전국민에 호소하는 동시 특별히 서울대주교구 산하 각 본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지시하시면서 『본당신부께서는 제반 애로가 있을 줄 믿사오나 신자들에게 이 취지(순천수재민구호)를 강조하시와 구호금 및 기타구제물품 갹출에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NCWC 한국 구제회에서도 제1착으로 식량을 전달했다.
교황 요안 23세 성하께서는 순천 수재 소식을 듣는 즉시로 자부적인 연민의 뜻을 표한 교황서간과 함께 1만불의 의연금을 하사했다. 동 의연금은 무한교황사절 직무대리 무튼 몬시뇰이 3일 순천 수해지구를 방문하고 현지에서 광주대주교구 하롤드 헨리(玄) 대주교께 전달했다. 교황 성하께서는 작년 영주 · 남원의 물난리때도 5천불의 의연금을 내리셨다.
이렇게 구호의 손이 뻗어가고 있으나 아직 거족적인 동정이 이곳에 쏠려졌다고 할 수 없다. 각 신문사에 접수되고 있는 구호금품의 누계를 보더라도 매우 저조인 인상이다. 그것은 해마다 겪는데서 그로인한 일종의 동정심의 관성 같은 것이거나 또 구호금이냐 하는 따위의 가벼운 짜증 등이 작용한데서 비롯한 것이라면 국민적 양심과 동포애에 대한 준열한 질책을 보태어야 할 일이다.
한편 일부 신문논평에서 읽는거와 같이 이번 참화는 태만에 의한 인재(人災)이다.
둑을 왜 든든히 손질 못했느냐. 3년전부터 둑을 보수해달라는 주민들의 진정을 들어주었던들 미연에 방지해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 혹은 수많은 인명과 억대에 달하는 피해에 복구비로 국민과 정부가 지출할 부담은 막대하다고 하는 논평들은 물론 논평으로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사실인즉 해마다 입는 각종 풍수해 피해는 막대한 것이다. 작년만 해도 인명 피해 4백16명(사망1백19명)을 비롯하여 건물 선박 농지 가축 도로 교량 등의 재산적 피해 총액만도 78억7천만원으로 추산한다. 정부가 그 대책비로 지출한 재정은 8천3백여만원이라고 한다. 이런 돈은 수방(水防)에 미리 사용했더라면 피해의 절반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논평일뿐 그 이상의 것은 못된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빈번한 구호의 호소와 어떤 고도의 신문논평 등이 동포애와 같은 지순한 국민적 열성을 조금이라도 (심리적으로) 급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기우(杞憂)이다. 좀 비약적(飛躍的)인 생각을 보탠다면 유물론자들은 항상 유물적인 것을 앞세운다. 사회주의자에게는 애덕사업(愛德事業)은 안중에도 없다. 사회개혁 및 시정(是正)이 없고서는 불행한 자들을 돕는 자선활동 등이 무가치한 줄 단정하고 있다.
사회주의에 물든 어느 청년이 고아원 수녀를 찾아와서 복잡한 듯한 사회주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애덕사업을 모독하는 언사를 늘어놓았다. 이것을 듣고 있던 수녀는 겸손한 말로 『당신의 어려운 말들은 잘 못알아 듣겠으나 사람이 10명만 모여도 그 가운데는 꼭 불행한 사람이 나온다는 거와 그를 즉각 도와줘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이 믿고 있읍니다.』고 했더니 그후 그 청년은 수녀의 말이 가슴에 못을 박아준 듯 양심의 가책에 못이겨 찾아왔다고 고백했던 말을 들었다.
순천 1만 수재민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즉시 물질로 베푸는 것 밖에 없다. 전국민의 조그만한 정성은 그것이 모여서 그들에게 최저의 살길을 장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데서 동포애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림픽 마라톤 경주에서 태극기를 달고 최선두를 달렸다면 국민적 갈채와 감격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같은 감개는 불행을 당한 형제들을 돕는데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어야 한다. 9월 한달을 동 구호기간으로 정하고 있으니 오른 손이 베푼 바를 왼손에도 알리지 말고 구호에 솔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