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안 23세 성하의 여덟번째 교황회칙 「地上의 平和」 「빠챔·인·떼리스」는 특히 시기적으로 말해서 전인류의 심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시기적이라고 지적한 말과 「지상의 평화」는 어떤 관점으론 상당한 일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1961년 5월에 반포된 사회회칙(社會回勅) 「마뗄·엩·마지스뜨라」에서 보다 더 한층 적극적인 사회적 내용 및 그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에 열국정부나 언론 등이 즉각 논평을 던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종류의 공식 논평은 제각기 자기 입장에선 그것이 될 것임은 오히려 당연할 뿐이겠으나 적어도 다음같은 공통된 견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즉
①유엔을 강력히 지지한 것이다. 관례상, 유엔이란 직접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성(世界性)의 공공(公共) 당국이란 표현으로 족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②과학 및 기술의 세계에 있어서 현대인은 반드시 거기 능숙한 자가 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그리스도교도들도 과학 및 기술을 잘 알고 부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③혁명을 반대하며 그 대신 서서히 개량(改良)해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④어떤 형태의 인종 차별에 대해서도 이를 엄히 단죄(斷罪)하였다.
⑤내정에 간섭하거나 무력(武力) 개입을 감행하는데 반대하는 뜻을 표명했다.
⑥일반적인 의미로서의 복지국가(福祉國家) 활동을 환영한 것이다. 이것은 전회칙 「마뗄·엩·마지스뜨라」에서의 사회정의(社會正義)에서 충분히 언급된 것이었다.
미리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 회칙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상당한 기간을 두고 차근히 그 뜻을 새겨가는 알뜰하고 주의깊은 태도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회칙을 대한 몇 가지 인상을 들어 보면 가톨릭 신자들이 옳은 사회선(社會善)의 방향에서 다만 그 방향만을 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요 행동적인 사회참여로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 회칙의 중대한 특색은 성좌(聖座)로부터 갈려간 그리스도교 및 그리스도교 신앙의 계몽을 받은 자와 다만 자연선(自然善)과 이성(異姓)의 빛만을 누리고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참으로 포괄적인 인류 전체를 부르며 그들과 가톨릭신자간에 하등의 차별을 두지 않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눈이간 평자들은 이를 가장 큰 특징으로 보고 이구동성으로 「위대한 교황」이란 찬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가톨릭신자들의 사명을 강조한 대목들은 너무나 뚜렷하다. 교황께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의 선물로써 빛나고 선으로 향해가는 원의(願意)로써 불타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동시에 필요한 것은 『각종 조직들 안에 행동적인 참여를 하고 내부(內部)에서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주라』고 했다.
신앙을 잘 간직하고 덕행(德行)을 닦아가는 그 일만을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까마득한 일인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른 생각나는 것은 옛 은수자(隱修者)들이다. 수도단체의 엄격한 고심극기와 고요한 생활을 한걸음 더나가서 저 산간(山間)의 적막한 곳을 찾아 오직 사욕편정(邪慾偏情)이란 것을 완전히 떨어버릴 길을 택했던 것이다. 또 그렇게 훌륭히 수덕(修德)을 쌓아 성인(聖人)이 되기도 했다. 신앙을 간직하고 덕(德)에 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겠거늘, 이에만 만족할 수 없다는 현대 가톨릭신자들의 사명은 한말로 막중한다고밖에 표현할 길은 없을상 싶다.
그런데 이번 새 회칙을 읽어나가면 그 길이 아주 환하게 밝혀져 있음을 본다. 우리가 자칫하면, 전통이나 제신앙을 고수(固守)하는데만 몰념하는데서 무의식 중으로서라도 배타적(排他的)인 자세에 흐르기 쉬웁다. 이는 본래 가톨릭 사상과는 동떨어진 그것이로되 쉽게 기울어 질 수 있는 일이었다. 회칙은 이 점을 경고하여 협동(協同)이란 말을 가끔 쓰고 있는 것이다.
성좌(聖座) 밖에 있는 그리스도교는 물론이요 아직 그리스도적 계몽을 받지 못한 다만 자연선(自然善)만을 지향하고 있는 그들과도 한 협동의 미(美)를 세워 땅 위의 평화를 유지하며 증진시켜 갈 것을 간곡히 그리고 엄숙히 선언한 것이다.
이 중대회칙을 우선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갖은 방도와 방법이 다채롭게 장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