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일치(再一致)를 실현하는 길에는 많은 문제와 그것들을 해결하면서 통과할 여러 관문(關門)이 가로놓여있는 것이다. 그 관문의 하나는 곧 가톨릭의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성모신심(信心)일 것이다.
한국의 「프로테스탄」 교회 신자들은 성모신심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개인에 따라서는 극구 비난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이 지나쳐서는 마치 가톨릭은 마리아를 예배하는 종교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같은 오인(誤認)을 잘 살펴보면 「프로테스탄」 신학자 및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발설이 아니고 아직 가톨릭교회의 지위와 그 안을 알지 못하는 지극히 피상적(皮相的) 관찰을 소박히 표시한데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혹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성모공경의 열렬한 정성에서 은연중 받아간 인상에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오인은 분수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는데 오인(誤認)은 본래 오해하는 자에 마땅히 그 책임이 있는 동시에 그같은 오해를 주게된 탓을 또한 신중히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최근 뉴욕의 「루터」교 목사 인찰스.B.폴슈박사는 『우리 「프로테스탄」들은 마리아를 욕되게 무시(無視)해왔다… 우리 주님의 이 어머니에게 정성과 감사를 드릴줄 모르고 있었다』라고 교회일치와 관련된 대목에서 이런 중대발언을 했던 것이다. 그는 범신앙(凡信仰) 운동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옳은 교리의 바탕에 서지 않고서는 그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성서 및 역사적 기록 그리고 신학적인 근거에서 생각해 볼 때 가톨릭교회의 성모신심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루터」교 목사도 성모신심을 통해 교회재일치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밝히지 못하였다.
사실 성모의 바른 개념(槪念) 없이 그리스도를 옳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참 사람이요 동시에 신(神)이였다면 그는 오직 그의 모친 성모를 통해서만 인간으로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성모는 구속사업에 있어서의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에 대하나 바른 개념을 잡는다면 시간(時間)의 끝까지 계속될 교회에 관한 옳은 관념을 포촉할 수 있겠다. 그 이로(理路)는 정연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성(人性)을 취하지 않았다면 교회도 있을 까닭이 없고 구속도 없을 것이다.
오직 그같이 인성(人性)을 취함으로 인해서 교회가 설립되고 그것을 통해 구속의 은혜를 인류위에 내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성을 취했음과 지상(地上)의 교회 간에는 관계가 있는 것이요 그 결정적인 역할은 불가분의 성모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초대 「프로테스탄」들은 성모신심을 저버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성질(性質)를 새로 정하려는데 있었다.
초대 「프로테스탄」 지도자들이 개혁을 서두르는 나머지 성모신심에 냉담(冷擔)한 것은 모든 과격한 개현운동에서 볼 수 있음과 같이 한 촉발된 감정의 발로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교회재일치라는 대의(大義)를 앞에두고 현대 「프로테스탄」 지성(知性)들이 성모신심을 재검토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비판할 때, 그것이 중대할수록 편견이나 속단을 극력 피해야 한다. 성모신심에 대한 「프로테스탄」 인사들의 오인(誤認)이 역사적인(宗敎改革史) 편견과 속단을 떠나서 건전한 지성(知性)으로 장만되는 신학적인 연구의 영역(領域)에 들어서게 된 것은 참으로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재일치는 한갖 세기적(世紀的) 구호(口號)가 아니다. 무한 노력을 경주하여 기어코 성취시킬 세기적 과업인 것이다. 가톨릭은 더 큰 관용과 이해 및 사랑을 바탕으로 문호를 활짝 개방해야 하고, 「프로테스탄」은 가능한 길을 잡는대로 흠연히 되돌아 설 줄 알아야 한다. 앞에 인용한 폴슈박사의 말대로 교리를 근간으로 한 재일치를 가장 건전한 그 방도로 내세워야 한다. 가능한 길은 곧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5월은 우리 전통대로 성모신심을 강조하는 달이다. 우리의 정성이 배가되고 또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들 갈려진 형제들이 돌아올 길을 열어줄 수 없을 것이다.
5월의 성모신심은 어느 곳에서보다 가장 많은 오인(誤認)을 장만하고 있는 우리 한국에서 더 많은 신심행사와 병행하는 교회재일치의 정신을 강조할 일인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