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학교에서 국어를 배울 때에는 「가갸 거겨』와 『각간갈감…』부터 시작했다. 어른의 논리로 따져본다면 『기역』에 『아』를 붙이면 『가』가 되고 『가』에 기역을 붙이면 『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렇게 쉬운 원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이외의 주장을 한다는 것은 큰 망발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국어책은 『가갸 거겨』나 『각간갈감』은 한번도 안가르치고 낱말 구성에 의한 언어와 문자학습을 하고있다. 그것은 최근 심리학의 발달에서 오는 아동 학습 방법의 과학적인 파악에서 온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답 교육의 실태는 아직도 그 내용에 있어서 『가갸 거겨』 시대의 것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 여전히 『각간갈감』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문답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문답에 흥미를 느낄까봐 겁이나 내는 듯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딱한 노릇을 되풀이 하고 있고, 『가갸거겨』를 가르치지 말고 『각간갈감』식으로 하지 말자면 큰 무식장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국민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기간은 인생 전반의 끔찍한 성장기이다. 이 크고 자라는 성장의 시기라는 것은, 바로 성장 자체의 욕구때문에 신기하고, 변화있고, 남이 아니하는 것을 잘하고 또 원하는 때이다.
그런데 교회 당국은 국민학교 일학년에서 고등학교 삼학년까지 아니 그 이상이라도 무엇을 주는가? 해마다 교과서가 바뀌고 국어 · 산수 · 사생 · 자연 · 영어 · 과학 · 수학 식으로 세속 교육은 항상 변화와 전진과 신기를 늘여놓고 있는데 성당에서는 꼭 같은 체제 꼭 같은 내용에 다만 길고 짧은 분간이 있을 뿐인, 그림도 없고 매력도 없는 손 바닥만한 문답책 한권을 내내 들고 다니다니 문답을 배우는 흥미도, 관심도, 기쁨도 일부러 어린애들에게서 박탈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점점 커 갈수록 일평생 꼴도 보기 싫은 것이 「문답」이라는 인상만 어린 머리 속에 깊이 깊이 박아주는 것 밖에 안될 것이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 아닐소냐!
이 얼마나 세워놓은 목표와는 거리가 먼 일이 아닐소냐!
세속 무노하가 발전해 나갈수록 우리가 신앙의 절름발이가 되어가는 까닭은 가장 중요한 종교교육에 너무나 시대착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해서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 문답책은 물론 신학적으로 일언반구도 수정할 필요가 없는 정확 명백한 명제들이며 그 표현도 구 교우들과 한자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말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신학자의 이론에 맞는 것과 배우는 사람의 심리에 맞는 것은 딴 문제이다. 그리고 문답책은 신학자에게 필요한게 아니라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도대체 딱한 것이 현재의 문답은 「견론」집으로 되어있고 「입문」과 「과정」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앙을 몸에 붙일 수 있는 예비 단계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가톨릭 교회가 무엇인지 침례가 무엇인지 강생과 구속 사업을 통한 오주 예수의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 도리가 없어 그냥 문답 조목에 따라 한마디 외워서 환약 삼키듯이 삼켜버려야 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이 되고 도로 토해내고 하는 상태가 벌어졌다. 더구나 아이들에게는 정말 「가혹」 한마디로 그칠 수 밖에 더할 말이 없다.
「가」에 「기윽」하면 「각」이 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어른 생각이고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을 왜 뿌득뿌득 그렇다고 우길 필요가 어디있는가!
이 「가간갈감」의 문답이 하루바삐 없어질 날이 오기전에 먼저 그것이 시대착오라는 점만이라도 납득이 갔으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병원을 짓는 일, 학교를 세우는 일들 보다도 이 문답교육을 혁신하는 문제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보다 더 화급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이라도 해주었으면 감사하겠다.
문답교육은 하루 바삐 개선되어야 된다. 그리고 새로운 문답 교사도 하루 바삐 양성되어야 된다. 다시는 「각간갈감」을 안가르치도록.
李海南(漢陽大學校 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