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몸은 이미 싸늘해가고 있었다.
미사의 몸이 식어감에 따라 미사의 전신에 받은 상처의 괴로움도 점차로 가시어지고 있음을 동생의 결테 조용히 앉아 눈 하나 깜짝 않고 임종을 바라보는 마사는 느낄 수 있었다. 흑인(黑人)만이 지닌 검은 피부의 윤기(潤氣)가 사라지는 순간은 물이 모래 위에 부어진 것보다 빨랐다.
노예의 신분에 유언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나이 어린 미사에게는 마지막으로 언니한테 할 말이 있다.
그것은- 『언니와 헤어지더라도 「버찌니」로 갔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어둠컴컴한 밀짚광 속에서 언니 마사의 두 눈동자가 검정 고양이 눈처럼 커졌다.
『너 정말 마님 방에 들어갔었니?』
차마 주인 마님의 보석 상자에 손을 댔더냐고는 물어지지 않았다.
주인 마님 「랭커스타」 부인의 보석 상자가 뒤엎어지고 조그만 「루비」 한개가 도난을 당했다는 그 시간에 미사는 이웃댁 머슴 노예 빌리와 닭의 장 뒤에서 놀고 있던 것을 마사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마사가 목화 밭에서 돌아오다가 닭이 장 모서리에 남자 신발과 나란히 미사 신발이 발목만 내밀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 때 마사가 그리로 쫓아가서 동생을 끌고 왔던들 미사가 도둑의 누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미사도 끝내 제가 토옹 그날 마님 방에 들어간 일이 없었다고 완강히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 시간에 빌리와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뚜렷한 「알리바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꺼내지 못했다. 노예 계집애가 남의 집 노예 머슴놈과 불미한 사이에 빠지는 것을 자백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사는 그것을 내세우지 못한 때문에 모진 매를 맞고 지금 죽어가고 있다.
비록 어리지만 영리한 미사는 사실을 감추고 맞아 죽는 것이 빌리마저 죽음으로 끌어넣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 불쌍한 동생 미사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멀고 먼 나라로 떠나는 참이다.
살갗이 검게 타고난 아비와 어미에게서 다시 살갗이 검은 육신을 물려받은 탓으로 마사와 미사는 어버이의 얼굴도 기억에 없이 이곳 장자(長者)의 집에 노예로 팔려왔었다.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검은 살갗속에 흐르는 피만은 순결한 두 자매뿐이 아니더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는 이제는 아무도 딴 사람이 없는 이 밀짚 광속에서 언니 마사에게까지 거짓자백을 하고 있다.
클대로 커진 마사이 두눈이 닫아졌을 때 붉은 빛이 감도는 눈물이 두 줄기 주르르 흘렀다.
『그럴리가 없어. 넌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거야.』
이 말이 마사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으나 그뿐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것은 노예가 마지막으로 주인 마님을 비오(庇護)하는 거룩한 충성심- 이라고 마사는 생각했다.
『하느님 이 어린 양을 부디 보살펴 주옵소서.』
마사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사는 『언니, 담에 태어날 땐, 검둥이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하였다.
마지막 숨을 모는 마당에 온갖 힘을 쥐어짜 한 마디 배앝은 말이었다. 다음 순간 미사는 예기한 대로 절명하였다.
마사는 뭐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미사는 저를 무고하여 채찍을 댄 주인 마님에게 결코 자비(慈悲)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미사는 역시 억울한 제 신세를 한탄하고 억울하게 죄에 몬 백인의 주인을 원망하며 죽었다.
마사는 눈물을 주먹으로 문대어 씻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담에도 검둥이로 태어나겠어. 그리고 언제까지 백인이 검둥이를 때리고 죽이나 두고보겠어』
그러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깔깔 웃었다. 누가 들었으면 악마의 웃음이라 여겼을만큼 요사스런 웃음이었다.
그러나 흑인 계집 종 마사에게는 「콜사코프」 증세가 미사에게서 발작한 것을 알 도리란 천만부당한 일이었다.
크나큰 충격을 받아 사물(事物)을 잊기 쉬우며 중단될 기억을 그럴듯한 거짓말로 뭉쳐 버리는 병증 「콜사코프」병은 그당시 문명을 자랑하던 「아메리카」 천지에 단 한사람도 아는 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미사가 운명한 날은 콜사코프씨가 이 병증을 발견한 19세기 중엽보다 40년이나 앞선 1812년 9월 22일이었기 때문이다.
노예 해방의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38년 전에 해당한다. (1962.10.2)
趙豊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