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 개회와 동시에 일간 통신 · 신문 등의 보도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 사명의 중대성을 생각하고 뉴쓰 보도는 물론 사설과 다른 논설까지 정중히 취급하고 있는데 존경을 보내는 바이다. 그러나 평소에 종교 및 가톨릭 기사에 익숙치 못한 탓인지 용어(用語)의 오용(誤用) 또는 내용에 있어서도 공의회 자체의 의의 및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한 오보(誤報) 내지 경미한 「미쓰테잌」을 범하고 있음을 산견(散見)할 수 있다. 「가톨릭」을 「카토릭」 「카톨릭」하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에서 통용하고 있는 대로 「가톨릭」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가톨릭을 현대화(現代化)하는데 목적이 있다. 운운했는데 어떤 의미로서도 가톨릭교회를 변모시키는 뜻을 취할 수 없다. (그 통신 · 신문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우차(牛車)가 자동차로 대치된 시대적 변천에 신중한 관심을 보내고 있음은 사실이다.
사실 용어(用語)의 오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깐 공의회라는 역사적인 대사업의 진행초부터 억측 기사를 쓰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인줄 안다. 그것도 이곳에 앉아서 시사잡지나 방송 등을 엮어서 사견을 붙인다는 것은 진지한 편집자의 상식으로 볼 수 없다.
다음 교회재일치(再一致)에 결정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의(異議)는 없다. 오히려 이 관계의 기사는 매우 조심성 있게 다루어졌다고 보겠다. 끝으로 공산주의에 대해서 이 문제는 지금까지 너무나 명료히 밝혀온 터이므로 이번 공의회가 마치 여기 중심을 두고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이곳 중심의 표현이다 그리고 상당히 구체적인 문제들을 예거하여 곧 공의회의 결정을 보게 되는 줄 보도하고 있는 것은 이것도 성급한 생각인 것을 지적해 둔다. 그 원칙을 들면, 자연법(自然法) 및 신법(神法)에 속하는 사항(事項)은 교황 및 공의회로서도 전혀 변동시킬 권한이 없는 것이다.
신앙 · 교리 문제 및 성모신심(信心)에 관해서는 새로운 정의(定義)나 성명을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항(事項)의 변동으로 교회일치의 방도를 세우지 않을가 하는 생각은 무근한 억측이다. 만일 여기 관련성을 찾는다면 분리된 교회 신학자와의 대화(對話)이 보다 가능한 길을 개척하고 형제애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