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풍을 찾아 어디고 가고픈 계절이다. 탁 트인 들을 거닐고 싶은 때이다. 막상 나서보면 그저 대견할 뿐이다. 그래도 무난하기로는 이름있는 산사(山寺)나 휘돌아 오는 길밖에 없다. ▲언젠가 우리 순교성지(聖地)들을 가다듬어 순례(巡禮) 「코스」를 만들었으면 하는 말을 했더니 독자들의 대단한 찬성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게 어디고 가고픈 마음을 순례 「코스」에다가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간주일 오후 반사자가 대구 속칭 안지랑골짝 갈멜 여자수도원을 찾은 것은 순례의 정성도 없지 않았다. 그 언덕에 다가서면서 바라보이는 그러게 평화스리 자리잡은 갈멜의 동산, 느리게 잡아서 15분간은 그 종찹을 바라보면서 걸어갈 수 있는데 더없는 안식(安息)을 숨쉬게 해준다. 갈멜소성당은 흔히 화첩에서 곧잘보는 「모던」 형식이었다. 한데 족히 음미(吟味)해보면 그것이 분명 복고(復古)의 소박(素朴)한 선(線)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말했던가! 기도는 텅 빈항아리 담아도 담아지지 않는… ▲저 구약의 시인 다비드는 결약의 궤 앞에서(그 實存앞에) 검은고를 치며 춤을 추었다지 않는가. 이곳 갈멜의 딸들이 일순도 놓치지 않고 지키는 현시(顯示)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못내 채우는 기도의 항아리를 다 채운듯한 심향(心鄕)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한국인 지원자 1명 허원준비자 1명에 원장수녀를 포함한 5명의 오지리 갈멜회원들이 아직 담도 쌓지 모한데다가 짐작컨데 내부의 마려도 다 이루지 못한채 봉쇄수도생활(封鎖)에 들어갔다. 듣기로는 귿르은 빵 몇조각에 물한잔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한다. 하루바삐 당이라도 기름지면 밭 농사 젖소 몇양을 치게되어 보탬이 되련만 지금은 맨땅에 여름집 같은 건물만 우뚝 서있어 찬바람만 회돌며 쓸쓸하기 짝이없다. ▲갈멜수도원은 자유로히 찾아가 그들의 힘있는 기구를 부탁할 수 있다. 그들은 부탁받은 기구를 사무치게 대행해주고 있다. 그 때문에 세계 어디서도 이 갈멜수도원에 지극한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곡식한톨 생산이 없는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구해다가 살고 있는지. 이곳을 방문할 때 들고가기 좋은 설탕 버터 치즈 혹은 사과 쌀 같은 식량이라도 그들은 신자들이 알뜰히 여겨주는 사랑의 선물로 달갑게 받아줄 것이란 말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