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전교지방을 위한 기구의향은 『교회의 사회교의(社會敎義)와 행동이 후진국가들을 무신론적 물질주의의 위험에서 구하여 주시기를』 기구하게 되어있다. 이 기구 의향은 일반의향 즉 세계적인 것과 특별히 전교지방을 위한 두갈래로 되어 있는데 매월 본지 끝호에 다음달의 것을 실리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 가톨릭의 공통된 기구의향이며 한소리로 드릴 수 있는 보다 큰 기구의 힘을 모으자는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교의와 그 행동이 무신적 물질사상을 대적(對敵)할만한가? 잠시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그리스도교적 사회윤리(社會倫理)는 심오(深奧)한 근거와 또한 오랜역사를 가졌다. 그것의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서는 가톨릭 사회정책(社會政策)이다. 그 원전(原典)으로서는 「레룸 노바룸」이 있고 「과드라제시모 안노」가 있다. 최근 반포된 요안 23세 성하의 사회회칙(社會回勅) 「마뗄 엩 마지스뜨라」는 이 한곳에 모든 원칙을 요약해서 빠짐없이 수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마뗄 엩 마지스뜨라」만으로서 원칙에 빈곤은 없다고 할만하다. 요즘 유엔총회에서 각국대표들이 그들의 발언 및 의견제출 등에 이를 인용하고 있는 것은 그 진가(眞價)를 충분히 방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명한 가톨릭학교 등에서는 그곳 교구장의 명령으로 정과목(正科目)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도 이 방면에 너무 어둡다. 교회의 사회교의를 배울 기회와 장소가 전연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고작해야 교리문답의 한 조목으로 주인(主人)이 하인(下人)에게 할 본분(本分)은 무엇이냐 하인이 주인에게 할 본분은 무엇이냐 하는데 머무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 타개책(打開策)으로 우선 학생회 안에 가톨릭 사회교의연구 「구룹」 이 생겼으면 한다. 그들이 지도신부로부터 일정한 교육을 받고 수시로 발표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일반게몽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사회교리는 훌륭하다. 그러나 실천한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보여달라』 이말은 후진 전교지방에서 흔히 듣는 소리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의 사회교리는 훌륭하다는 말조차 못듣고 있으니 캄캄 밤중에 있다고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