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한국시간으로는 아침 3시49분 교황 요안23세 성하께서 서거하셨다. 그 전날 밤늦게까지 각종 방송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 것은 이곳 편집국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황의 용태는 이제는 시간 문제이란 말을 들었을 때 부음을 전하는 신문 제작의 차비를 차렸다. ▲「로마」에서 타전해 오는 수많은 다른 통신들, 대개 글발을 달리할 뿐 비슷한 줄거리들이었다. 요안 교황님은 이윽고 우리를 떠나신 것이다. 그처럼 당차게 종행무진한 활동을 보여주시던 그 모습을 비록 사진보도나 말씀을 통해서나마 새롭게 들어갈 길은 멀리 살아진 것이다. 한 역대는 장엄한 사막(史幕)을 내리듯 종연을 고한 것이다. ▲요안 성하의 친모습에 대한 분들도 수없이 있을줄 안다. 그보다 가톨릭시보의 독자들은 매번 그 말씀, 그 모습에 대해 왔었다. 빠르면 한주간 늦어도 두주간을 별로 넘기지 않는 「로마의 소리」를 들어왔었다. 신문기사를 통해 듣는 그의 말씀들이 좋은 표현으로 잘 전달되지 못했었다면, 그 책망은 이어 둔한 붓대들이 다 걸머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번역어의 난삽한 데가 있음을 널리 용서하면서 교황 말씀의 줄기를 잡아 정성되이 읽어온 관대한 독자선배 교형들과는 참 땅 위의 아버님을 여읜 슬픔을 감출 길이 없다. ▲우리는 현실에 당황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쪼달리는 생활고 같은 거야 저 아랫것으로 밀어놓고도, 보고 듣는 일에 분심 잡념이 얼마나 많은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런 도피책을 방편삼아라도 한번쯤은 생각지 않는 분은 드물 것이다. 곡 이럴 때 돌려주는 요안 성하의 말씀 「로마의 소리」가 앞을 탁 트게 해주었다. ▲그와같이 근대 영명하신 역대 교황님들은 위대한 사회회칙(社會回勅)들을 소중한 유언으로 전해준 바 있다.
사실 요안 성하의 사회회칙 「지상의 평화」를 읽어볼때 그것은 구원한 장래에까지 평화를 논의하는 인류의 언어(言語)가 될만한 그것임을 통감케 해준다. 이렇게 우리 가운데 그 위대한 이름과 같이 살아있을 것이다. ▲이 9일간 우리는 슬퍼할 줄밖에 모르니 침통한 심정에 잠겨도 좋을 것이다. 또다시 역대 위대한 교황위를 이을 그런 분을 분명히 주실 때까지 울부짖어 그칠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