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안23세 성하의 승하(昇遐)로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복상(服喪)의 무겁고 애절한 시간을 고요히 지내고 있다. 요안 성하의 유해는 성 베드루 대성당 지하에 2년 전, 생전 성하께서 친히 선택한 곳에 장례되었으며 7일부터 시작하여 전통대로 9일간의 교황장례를 지내게 되었다. 9일장의 끝날은 그간 성체축일 및 성사주일 양일을 더 보탠 17일로 맞이하게 되었다.
당일은 성 베드루 대성당 중앙제대에서 대례 연미사가 봉헌된다. 이날을 기해서 상오 11시 서울 명동 대성당에서도 정부와 주한 외교사절들 그리고 각계 인사들의 참석리에 주한 교황사절 안또니오.델.쥬디체 대주교 집전의 고 요안23세 추도 연미사가 봉헌되고 서울 노(盧基南) 대주교의 추도강론이 있을 예정이다.
이렇게 교황 장례가 엄수(嚴修)되는 한편으로 교황 요안 23세의 후계자 선출의 가장 중요한 일이 진행된다.
방금 전세계 82명의 추기경들은 속속히 「로마」에 도착하고 있다. 공산 항가리정부의 손을 피해 1956년 이래 「부다페스트」 주재 미국대사관에 피신 중인 요셉.민첸티 추기경 한분만은 아직 교황선출에(CONCLAVE) 참석여부가 불확실하다. 소식통에 의하면 항가리 주교단은 정부 요로와 접촉하고 민첸티 추기경의 「로마」행 및 그 귀로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추진 중인 것 같다.
1958년 10월 요안23세 선출 당시의 추기경 총수는 51석이었다. 그 중 4명의 궐석이 있었는데 그 임시 서거한 분과 와병 중에 있은 분이 있었고 민첸티 추기경 및 유고 공산정권의 연금을 받고 있는 고(故) 스데피나츠 추기경이었다.
교황 선거일에 관한 발표는 아직 없으나 연일 추기경들의 비공식 회합이 계속되고 있다. 교황선거를 라띤어로 「꽁끌라베」라고 하는데 그 뜻은 열쇠(鍵)로, 란뜻이다. 교황선거가 밀봉(密封)된 곳에서 시행되기 때문이다.
추기경들은 교황서거로부터 15일 내지 18일째에는 교황선거에 착수해야 한다. 이것은 1922년 비오 11세의 교황령 「꿈·쁘록시메」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그 전에는 9일만에 선거에 들어갔었다. 먼 지역의 추기경들이 증가됨에 따라 그 시일을 15일간으로 만일 필요하면 18일간으로 연장한 것이었다. 교황선거 절차에 관해서는 비오 12세의 교황령도 있었고 요안23세에 의해서도 적지 않은 변경이 있었다.
가령 요안23세는 종전 3분지2에 1표를 더하던 것을 단순히 3분지2선으로 결정한 것이다. 출석 추기경 수의 3등분이 안 될때는 3분지2선을 1표 이상 차지하는 다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밀선거인 것은 더 말할 것 없으며 「시스틴」 소성당에서 조석으로 한 차례씩 투표하게 되는데 아무 추기경도 자신이 표를 던질 수는 없다.
목표자를 내지 못했을 때는 투표용지에 짚을 섞어 태워 흑연을 올리고 투표를 계속한다. 득표자를 얻었을 때는 흰 연기로 외부에 알린다. 요안23세는 11차만에 목표되었었다. 비오12세는 3차 비오 11세는 14차 분도 15세는 10차 성 비오 10세는 7차만에 각각 피선되었었다.
역사상 교황 선거에 황제나 관권이 간섭한 일도 있었으나 1059년부터는 추기경들에게만 선거 및 피선거권이 부여되어 왔다. 이론상으로는 남지인 가톨릭신자는 교황에 피선될 수 있으나 그런 경우 사제품 및 주교품을 받아야 한다. 1378년 이래 추기경들만이 피선되어왔다. 화란 출생인 아드리안 6세(1522-23) 이래 비(非) 이태리인 교황은 없었다. 1168년 클레멘트 4세 후계자를 선거하는데 17명의 추기경들이 2년 반을 두고 결정을 못내리자 격분한 시민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빵과 물만을 들여보냈더니 곧 그레고리오 10세를 선출했다고 한다. 이것이 아마 「꽁끌라베」의 여러 가지 관습을 장만케한 유래가 된 모양이다.
새 교황이 선출되는 순간 추기경들은 자리를 낮추고 피선된 교황은 미리 예비된 교황복을 갈아입게 된다. 이윽고 수석 부제(副祭) 추기경은 성 베드루 대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 새 교황의 이름을 고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진행되게 마련이다. 현 수석 부제 추기경은 검사성성(劍邪聖省) 장관 알프레도.오따비아니 추기경이다.
우리는 9일간의 승하하신 요안23세 성하의 복상 및 새 교황 선거의 기복(起伏)이 심한 순간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전환(轉환)의 사건들이 더욱 고요한 기도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그것은 역사의 심저(深底)와 그 중심을 밝히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姿勢)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