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첫 회합(6월19일)에 이어 선거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교황선거의 장소는 완전히 밀봉(密封)되며 새 교황을 선출하기까지 「바티깐」 시국(市國) 안에 마련된 밀봉 선거 장소는 선거 및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추기경들은 물론 선거 종사자들까지도 그곳을 이탈할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런 방식에 의한 교황 선출은 교회사상 79번째가 되는 것이다.
선거에 소요되는 시일을 예측할 수는 없다. 선교황 요안 23세는 12차 투표에서 만4일만에 피선되었었고 그 선임자 비오 12세는 불과 20시간만에 피선되었다.(1939년) 이것은 1623년 이래 가장 짧은 교황선거기간이었다.
현행 교황선거절차 즉 꽁끌라베(라띤어로 열쇠(鍵)로란 뜻)가 확립되기까지의 변천을 더듬어 보자.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의 선출에는 2년9개월 2일이나 소요되었는데 거기다가 선 교황의 서거 장소에서 선거를 해야하는 관례까지 있었다.
그레고리오 10세는 교황선거에 있어서 새 교황을 선출하기까지 선거를 연기할 수 없도록 결정을 내렸다. 교황 끌레멘뜨 7세(1523-1534)는 다시 교황 선거는 「로마」에서만 시행하도록 개정했다. 1903년에 피선된 비오 10세는 교황선거에 있어 어떤 군주의 거부권도 이의 행사를 철폐한다고 했다. 그 당시 「오지리」 황제 프란치스.요셉은 성청 국무장고나이던 람쁠라 추기경이 당선되면 「비토」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해 왔었다. 이런 일은 추기경들의 분노를 샀을 뿐 아니라, 새로 피선된 교호아은 만일 어떤 추기경이 교황선거 중 부표를 던져 특정의 정부를 돕는 일이 있다면 파문된다는 것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비오 11세는 교황의 서거로부터 새 교황 선출의 착수일을 최대한 18일로 결정했다. 비오 12세는 다시 교황선거 절차를 대폭적으로 시정하였다.
이 최대한 18일간을 설정한 이유는 원거리에 있는 추기경들의 사정을 생각한 것이었다. 가령 1878년 레오 13세 선거 때 그 당시 미국의 단 한 명의 추기경이던 뉴욕대주교 막콜로스키 추기경은 투표에 참석은 못하고 겨우 대관식에 대여서 도착할 수 있었다. 유명한 제임스.김본스 추기경(敎父들의 信仰 저서)은 1903년 8월 성 비오 10세의 선거 및 대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1922년 2월6일 비오 11세 선거 때도 미국의 추기경들은 한 명도 참가하지 못했었는데 이 사정을 참작하여 비오 11세는 교황령으로 선거기일 연장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제트」기 시대에 「로마」행은 18일간을 둘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요안23세대에 와서는 완전 「스피드」 시대를 실현했으니 뉴욕대주교 스펠만 추기경이 1958년 10월9일 비오 12세의 부음을 들은 것은 희랍 여행에서 귀국하는 공해(公海)상이었는데 6백명 선객을 실은 배가 추기경을 위해 항로를 바꾸어 「테레치라」도에 상륙하고 거기서 폴튜갈 특별기가 와서 불과 1시간만에 「로마」까지 무사히 안내하여 화제를 낸 일도 있었다.
요안23세 선출 당시의 추기경 총수는 55명이었다. 그 중 51명만이 1958년 교황선거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 때 선거에 나가지 못한 4명의 추기경들은 선거 개시 2시간 전에 서거한 76세의 무니 추기경 항가리 반공의거 사건으로 1956년 이래 「부다페스트」 미국공관에 피신 중이던 민첸티 추기경(그는 이번에도 참가할 수 있을지 뉴쓰의 촛점이 되고 있지만) 1960년 서거한 스테피나즈 추기경이 역시 유고 공산정권에 의해 연금상태에 있었고 또 한 분 토마스 텐(田) 추기경이 교통사고로 독일서 입원해 있던 중 병원차로 「로마」까지 온 일이 있었다.
현재 추기경원(樞機卿院)은 87의석 정원이지만 현재원은 82명이다. 이 82명의 추기경들이 전원 이번에 선거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인지 방금 통신들은 매일 추기경들의 「로마」 도착을 보도하고 있으나 밝혀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민첸티 추기경과 같이 공산정권의 탄압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과 기거에 불편한 연로 추기경들도 있기 때문이다.
대충 교황선거가 어떤 환경에서 시행되고 또 어떤 과거의 경로였음을 살펴왔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첫 회기 후의 이번 교황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상태아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이 고장 출신 추기경은 없지만 교회의 추기경은 한 지역 및 국가의 대표일 수 없는 만큼 깊은 관심과 더욱 성공적인 선거가 진행되도록 필요한 성우(聖佑)를 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