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최후 목적은 사주 구령에 있으며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은 교우가 자기 구령뿐 아니라 남의 구령에 힘써야 함은 전체인구의 2%밖에 안되는 한국가톨릭의 현실을 볼 때 더욱 시급한 과제라 하겠읍니다.
남의 구령에 힘씀에 첫걸음은 우리의 기구와 표양과 권고로서 교회밖에 있는 이들에게 교리를 넉넉히 배우게 하며 정한 시기의 훈련을 받게 한 후 진심으로 통회하고 사제의 손에서 성세성사를 받음으로 원본죄와 죄벌의 사함과 인호와 상존성총을 받아 천주의 자녀가 되게하는 것이겠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밖에 있는 이들에게 이런 준비를 시키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순간 순간마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은 천주를 모르고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줄 압니다. 이런 이들을 그대로 방치해두는 것은 과연 애덕의 의무를 거스림이 되지는 않을런지요. 이런 이들을 위해 성세성사의 같은 효과를 얻게하는 것이 임종대세라고 배웠읍니다.
현세 생활에서 나의 영육간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 드리는 애긍이 큰 공로가 된다면 죽을 위험 있는 사람을 잘 권고하며 타당히 임종대세를 받게 함으로 그를 천당에 보내어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공로이겠읍니까.
새가 죽으려면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면 그 말이 착하다는 曾子의 말과 같이 죽음을 앞둔 병자는 대개는 회심하여 좋은 마음으로 이런 권고를 받아들인다 함은 경험이 증명해줍니다.
또 그가 선종하게 되면 성교회의 거룩한 예절에 의한 장례의 모든 절차가 진행될 것인즉 세속과 이단에 골몰한 나머지 천주와 성교회에 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의 식구 친척 친구들은 상가에서 교우들의 헌신적인 좋은 표양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되며 연미사와 사도예절에 참예하기 위해 성당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되니 그들에게 성교회를 바르게 인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겠읍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임종대세 주기에 힘씀에 있어 교회밖에 있는 이들이 과연 우리의 권고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주저해야 할 것입니까? 임종에 처해 있는 병자가 우리의 권고를 듣고 안듣는 것은 저편에서 할 것이지만 힘껏 권고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겠읍니다.
金燦柱(요셉 · 洪川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