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림 첫주일을 맞이한다. 이렇게 4주일의 장림기간을 보내면서 성탄축일을 기다리게 된다. 장림때는 교회안의 일체 화려한 장식 행사를 피하고 혼배식까지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봉재 40일의 4순절과는 달리 이 장림 4주간은 어수선하게 지내야만 하는 까닭에는 주서섬길 만한 것도 없지 않다. ▲이번 공의회 교부들의 발언중에 현대생활에 있어 더구나 노동직장에서는 주일을 꼬박 지켜가기가 힘드니 그 관면을 관대히 하고 장림 및 4순절 시계(時季)의 보속(補贖)하는 정신을 강조하자는 것이 있었다. 보속하는 정신 희생을 치루는 생활 하는 것이 막상 실천하려들라치면 방해가 많고 그것으로 인해 남과(신자 아닌 사람들 간에) 어울리기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신자된 냄새를 지나치게 풍기는 것 같고 무슨 거룩한 행세를 돗보이게 들어내는 것 같을 수도 있다. ▲수도자와 같은 그런 생활을 해낼 수는 없으나 그 초보인 내면적(內面的) 생활을 동경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내적(內的)인 충실은 개인에서 비롯하여 「구룹」활동 즉 학생회합 창대 각종단체 및 교리강좌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속을 채울 수 있는 정성을 모아가야 할 일인줄 안다. ▲가톨릭신자와 교회안의 행사 및 신부님들의 강론가지도 어딘가 표현이 부족한 것 같고 지나치게 안으로 숨기는 듯한 인상이란 세 평을 듣는 수가 있다. 이것은 보수적이요 소극적이란 공격의 뜻도 있겠지만 그만큼 내면의 충실을 기하고 있는 진실성을 그대로 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을 가토리시즘의 살아(生)있는 전통이라고 하고싶다. 겉치장 외양적인 것 미사려구를 나열하는 웅변까지도 그것은 겉 외양 현혹에 불과함을 곧 알 수 있다. ▲기도와 침묵과 노동은 수도자들의 거의 공통된 생활 「못토」이다. 각박한 현실생활의 소용돌이 속에 세모(歲暮)와 같이 겪는 장림때만이라도 찾아 볼만한 일인줄 ▲어떻게 하면 장림때를 맞이한 성당 안뜰 그리고 우리의 집안 분위기를 장만할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단지 계절의 표정에서가 아니라 내면(內面)에서 치솟는 그런 감개(感慨)를 우리둘레에 감돌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평범하고 극히 자연한 가운데 실현될 수 있을 때 『典禮의 季節』을 맞이하는 가톨릭 습속(習俗)에 젖어들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