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영의 책임자는 학교장이다. 국가가 학교장에게 책임을 주었고 학부형이 학교장에게 책임을 부탁하였고 학생이 학교장에게 따라갈 것을 맹세하였다. 따라서 학교운영을 좌우하는 것은 학교장의 두뇌이다. 각개의 교육철학 위에 세워진 운영목표란 같은 가톨릭학교라 하여도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개개 학교장의 투철한 교육철학 위에 학교가 운영된다 손 치더라도 가톨릭학교에선 학교장이 좌우 못할 것이 하나 있다.
즉 『가톨릭정신의 기초위에』란 것이다. 가톨릭학교는 가톨릭정신의 기초위에 운영되어야 한다고 교육철학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종교철학이다. 구성되어있는 교사나 학생이 전부 가톨릭이건 가톨릭이 아니건 그것은 문제 밖이다.
물론 학교장은 현재 이 정신 밑에 학교운영을 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사 개개인에게 인식되어 있고 학생 개개인에게 철저히 주지되어 있느냐 하면 아직 『그렇다』고 외쳐 대답하기는 어렵지 않을가 생각된다. 우선 교내에서 교회에서 가톨릭 행사를 가져보자. 이 행사는 교과과정외의 행사라 참석해도 좋고 참석 아니해도 좋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교우 직원 학생이 있음을 안다. 어찌 미신자에게까지 가톨릭 정신이 전달되고 온 학교가 가톨릭정신으로 충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해에 한번 가톨릭 중고등학교장회의를 열고 있다. 여기서 물론 종교교육 진흥의 일들을 여러모로 강구하기는 한다. 그러나 실천력이 잘 도모되어 있지 않는 실정이다 역시 친목을 겸한 협의체에 끄치고 강력한 조직체로서 발족되지 못한 이유에서 일게다.
나는 이의 강력한 실천력이 도모되는 조직체로의 발전을 기원하며 아울러 지구별로라도 좋으니까 가톨릭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의 교양강좌가 열렸으면 한다. 일부에서는 벌써 열고 있는 듯도 하나 이것은 시급히 설립자 측에서 고려할 문제라고 본다. 교직원의 각자 자기분야의 전문지식의 수련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긴요한 일이나 이 가톨릭 정신 앙양을 위한 교양강좌는 그에 못지않는 중요성을 가져있다.
다음은 학생을 위한 종교교육이다. 현재 어느 학교고 종교교육은 하고 있다. 내용과 형태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애로가 있고 이 애로를 극복하는 노력만큼 그 효과는 크지 못하다. 우선 교재의 빈약이다. 빈약이라기보다는 없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현하 가톨릭학교의 종교교육의 방법은 복선(複線)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교우학생을 위한 교재와 일반 미신자학생을 위한 교재를 갖고 따로이 지도를 해야만 실질적이다. 이 교재 문제는 대단히 중요 긴급한 문제로서 산적된 여러 교구의 문제가 있으시겠지만 역시 주교단에서 만들어 주시는 일이 그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교리의 해설을 주로 성인 성녀의 행적을 예로 모든 학생이 즐겨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의 편집, 이것이 신자생은 신자생 대로 영적생활로의 심화를 쉽고 기브게 꾀할 수 있는 길이며 미신자생은 미신자생대로 종교에의 관심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종교시간이 딱딱하고 어렵고 착하고 바르고 의롭고 용감한 것을 억압 강요하는 시간으로 오인하기 쉬운 어린이의 심리를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 교회학교로의 공통문제로 들어야 할 점은 교우들의 교회학교에 대한 관심이다. 교회학교의 임자는 교우들이라고 본다.
임자가 지금은 완전한 구실을 하고 있지 않음이 확실하다. 언제나 학교모양에 관심을 갖고 학교발전에 힘을 써 줬으면 한다. 물론 학교와 교우간의 유대를 강화할 기연을 학교측이 만들지 못한 점이 더욱 클 것이다. 여하간 교회학교의 육성은 교우들의 손으로란 마음만은 교우 모두가 가져주었으면 한다. 교회학교가 가난한 학생도 가르쳐 주어야 하는 학교, 지능이 낮은 학생도 가르쳐 주어야 하는 학교라는 사고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가톨릭정신 밑에 가톨릭이 원하는 사람으로 지도육성하고 성장발달할 수 있게 마련하는 학교라는 의식을 교우 모두가 가져주었으면 하는데 그런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 본인도 연구중이다.
요약해서 이 복잡한 세계 정세하에 굳건한 국민을 길러내는 일의 일부를 담당한 가톨릭학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가톨릭정신의 충일을 각 부면에 작용시키는데 가일층의 노력이 있어야 겠다는 것이다.
楊利?(서울 啓星女中學校 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