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래묵은 서고(書庫)를 뒤지다가 그 당시의 한국교회잡지들이 몇권 굴러나왔다. 오래묵었다고 해야 한 25년 전후한 것들이다. 파란 표지의 경향잡지, 가톨릭청년, 가톨릭연구, 가톨릭조선, 천주교회보, 그리고 저 만주 북간도 용정에서 박아낸 가톨릭소년 등이다. 20대 30대의 청년들에게는 무척 진귀한 책들이요 시대의 고증(考證)을 얻어가면서 읽어야만 할 곳도 없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중 소년잡지를 펼쳐보고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故) 방지거3회원 이동구(李東九) 선생게서 어린이들에 주는 말 가운데 『너희들은 나뽀레온이 되려 하지 말라. 씨자가 되려 하지 말라. 저 산간에서 흐르는 맑은 물처럼 깨끗한 정신을 가지도록…』 대충 그런 뜻이다. 고 이동구 선생을 아는 분이면 그 시대에 그분으로서 족히 할 수 있었던 소리로 짐작이 갈 것이다. 새삼 경탄한 것은 그런 소리가 단지 그때의 외침에 그칠 수 없고 오늘 및 내일과 더 먼 훗날에도 항상 절실한 것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깨우침에서 나온 것인가 한다. ▲우리는 노상 값싼 영웅심을 발산(發散)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한 인상과 피해(心理的인) 마저 입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사람의 발작적(發作的)인 영웅심 앞에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형언할 수 없는 너무나 고가의 희생을 치루게 마련이다. 내가 아니면 이만한 일을 할 수 있으랴 싶어질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고 가령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무슨 말을 할령이면 마치 군중을 제압(制壓)하듯 열띤 목소리로 심한 「제스쳐」를 부리며 그것이 지나쳐서는 천하고 호된말로 비끄러진다. 곧잘 자기 말에 도취한 사람이 되고 있음을 본다. 그 지경이 되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막 털어 놓아야만 자기 마음도 후련해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얼마나 헐한 영웅심의 발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자기를 아깝게도 상실(喪失)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군중이 그 앞에 동(動)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받고 본심(本心) 아닌 외모를 움직여 극히 군중 심리적인 작용을 시현함을 알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군중과 멀리 떨어진 고독한 존재가 되고 지도자의 모든 자격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