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모」 「성체」. 우선 이 세 가지의 이해가 현대에 긴급하다고 어느 교회 수장(首長)은 몇 해 전에 「파띠마」에서 역설했다. 「파띠마」하면 전투적 뭇니론 정권 소비에트가 수립되던 「모스코」가 연상된다. ▲「성체」의 확신은 교회 안에 국한된 교리지마는 「성모」는 인간적인 면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된다. 「교황」은 타종교 국가는 물론 저 전투적인 무신론 정권까지도 현세적인 면에서 그 지위가 고려되고 있다. 소련서까지 출판되었다는 「지상의 평화」에 앞서 반포된 「어머니와 교사」는 바로 「자모 겸 은사」라는 뜻이다. 전 인류에게 인자하신 어미 겸 은혜깊은 스승인 교회의 최고수장의 원 칭호는 「황제」가 아니라 「아비」-PAPA-임을 적절하게도 지난 교황주일에 공식으로 천명한 것은 한주교님의 교서였다. ▲사전을 캐기보다는 「교황」을 체험하신 한주교님의 실감을 통해 우리는 공과책에 병용되고 있는 「교종(敎宗)」을 비교하고 싶다. 어느 편이 PAPA의 참 뜻을 보다 더 현양하는가? 아직도 아까히 추억되는 요안23세 선(先) 빠빠님의 손에서 타오신 「신수보훈」(神修寶訓)을 효성깊게 삼가히 끄내 보이시던 한주교님의 『요안23세 교종(敎宗)의 그 향기로운 자애와 풍모가 이 「보경」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까 합니다』라는 글월은 사신이지마는 혼자만 볼 것이 아닌상 싶다. 『홀로 들어 앉았으면 평화를 누릴지나 밖에 나가면 다툼이 많으리라』로 시작하여 『반성할 과거의 세 가지 잘못은 행해버린 악, 행치 못한 선, 잃어벌니 시간이니라. 경계할 현재의 세 가지 위험은 생명의 짧음, 구원의 어려움, 마땅히 구원받을 자의 드뭄이니라』로 맺어가는 이 「목잠」(牧잠)의 전반에는 휴사 「노장」(老壯)의 「무위」(無爲)와도 비슷하게 들리는 훈계가 있다. 『너- 능한 바를 다 하지 말지니라. 너- 갖은 바를 다 베풀지 말지니라. 너- 아는 바를 다 말하지 말지니라. 모름지기 기도하고 독경하고 속세를 떠나 잠잠하고 고요하라』라고. ▲재위불과 4년반에 2천년 역사의 총결산과도 같은 일을 남기신 선 교종님의 대위(大爲)의 비결은 대무위(大無爲)가 아닐까? 이것은 자모 겸 은사이시던 선교종님의 목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