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곧 시작된다. 학교의 규칙생활 및 그 규칙이 요구하는 굴레를 벗어나 집안으로 들어오는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별반 없다. 그들이 가정을 중심잡는 생활을 잠시 떠나서 제각기 소속된 본당의 생활을 고착해보자. 우리의 귀한 가톨릭 자녀들에게는 학교생활 및 가정생활과 전혀 동일한 비중으로 본당생활 또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우 자녀들의 본당생활은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그 뜻을 새기기에 따라서는 참 막연하고 표준을 세우기에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가령 아동들을 위한 교리반이나 혹은 가___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혹은 학생회같은 활동을 두고 그들의 본당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방학 때를 당했으니 그것을 좀 강화하면 되지 않겠느냐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본당에는 학생들만이 있는 것도 아니겠으니 그 정도를 넘어서 더 어떻게 해줄 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 달려있는 것이다.
본당이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그 정도의 의무적이요 때로는 형식적인 시간의 배당만으로 채워지는 것을 곧 그들의 본당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활이란 바로 종합적인 인격활동이겠는데 어느 학술강습소에 가서 영어나 수학과목을 보충해서 배우듯 만일 교리공부도 그렇게 배워주는데서 그친다면 본당의 교리시간도 영수학관의 그것과 별 차이를 둘 수 없겠다.
분명히 우리는 방학한 학생들의 본당생활이란 다염ㄴ한 교육적 과제를 두고 신중히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학술강습소에 나가서 단지 보충수업을 한다는 식의 관념이나 공리적(功利的)인 생각을 떨어버리고 본당 행사에 참석하도록 해줄 수 있겠는가? 학교공부에 몰리다가 방학 때는 그 대신 교리공부를 곱배기로 해야 된다는 강박(强迫) 또는 중압(重壓)을 덜어주면서 그리고도 즐거이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학교의 학습방법 내지 생활지도는 민주주의 교육이란 이념아래 크게 발전해 가고 있다. 정부가 큰 예산을 던져서 선진국의 제도와 그 실제를 도입하는 한편 교육대학이나 그밖에 전달강습회 등을 통해서 발달된 교육방식을 전국적으로 고르게 펴나가려 진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매우 높이 평가할만 하다. 오늘의 성인들이 종아리 맞으며 공부하던 그때와는 참세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교교육의 발달과 만일 본당에서의 교리공부가 비록 그 본 뜻을 달리한다고는 하겠으나 적어도 그 방법에 있어서 전자는 월등히 우수하고 전진했는데 후자는 구태의연하다면 첫째 학생들이 그 가르치는 바를 잘 따르려들지 않을 것이요 교육상 절대 요건이 되는 권위도 설리 없다.
요즘 성행되는 학생 교리경시대회같은 것도 단지 경쟁에 치중한다면 결국 1, 2, 3등의 당선자를 내는 것밖에 별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당선자들만이 반드시 우수한 가톨릭 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교리경시대회를 무용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돌리자는 생각은 없다. 한 행사자로서 유익하고 또 흥미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교리교육의 본질에서 볼 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한 피상적인 행사에 불과하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만치 생각이 미쳐지면 도대체 학생들의 본당생활은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한다는데 어렴풋이나마 그 개념이 떠오르게 될 줄 안다. 그것이 무엇이다 또는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본란이 제시할 성직이 못 된다. 그것은 반드시 「교리교육」을 전문으로 연구했거나 그 실제를 직접 관장하고 있는 본당신부에 맡겨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여론의 입장에서 거론한다면 본당의 학생지도의 방식은 개선되어야 하고 또한 생활의 한 연장(延長)으로서 명실공히 가톨릭 학생들의 본당생활의 한 몫을 형성(形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방학한 교우 자녀들을 받아들이는 본당의 문은 넓고 즐검에 차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맞이해줄 짜여진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본당의 열심한 어른들은 방학동안 학생들의 본당생활을 돌봐주기 위한 모임을 가지고 거기서 세워진 의욕적인 건의(建議)를 본당 신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런 일은 바로 자기네 자녀들의 문제이니만큼 많은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오늘 학생지도에 소홀하면 적어도 5년 후부터는 본당의 유능한 일꾼이 될 청년층을 잃고 말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본당은 방학한 학생지도에 교육적이요 유쾌한 「랜플」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