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겨자씨만한 신덕이 있더라도 저 산을 보고 옮겨져라 하면 옮겨지리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 다른 성경 어느 귀절보다 더 꼭 믿고 있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최주교님을 모시고 학교일과 교회일을 도와 드릴 때에 자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 이상도 하다! 어떻게 저런 일이 저런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고 감탄하는 것입니다.
보통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보기 좋게 목전에 이루어지고, 차마 바라볼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성공적으로 성사(成事)되는데야 어떻게 초자연적인 힘의 소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보통 주교님이 어떤 일을 계획하실 때는 반드시 신임하시는 참모격인 인물을 부르시고 이러이러한 일을 해보겠는데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물어보시는 것이 드무시고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합시다 하는 답안을 먼저 내리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면 보통 그 방법이 납득이 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대로 성실히 해나가면 그 사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그 자연 현상이 역행이 되는 것을 여러번 나는 느꼈읍니다. 또 그리고 어떤 큰 일을 하시려고 하실 때는 반드시 성당에서 기구드리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또 때로는 소화가 잘 되지 않으신다는 구실로 대재를 지키십니다. 묵주신공은 하루에 몇 차례나 드리시는지 잘 알 수 없읍니다.
천주님의 뜻과 더불어 일하시자는 것이겠으며 또 때로는 천주님께 무리한 억찌도 많이 쓰시는 것같이 나로서는 느꼈읍니다.
토마스.아뀌나스는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는 천주께 대월하여 직접 배우셨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주교님은 이 성인을 본뜨신 모양입니다. 이런 최주교님의 생활 태도가 한 사회인의 눈에 비칠 때는 강한 신념이라 하겠고 종교인의 눈에는 천주의 은총의 감도라 하겠고 적의(敵意)를 가진 분의 눈에는 고집이라 보일 것입니다. 『기구하고 일하자』하는 표어 그대로의 생활인 것이라고 나는 봅니다.
최주교님은 당신이 늘 하시는 말씀대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 하는 식으로 지극히 황송하게 생각하시는 순박하시고 겸손하신 어른이시며 또 인간면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서민적이시고 인정과 눈물이 많으신 그야말로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이십니다. 성의학교 초창기 때에 수녀선생을 구하시려 38마선을 넘어 적지(敵地)생활 1개월여를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시면서 인간사회의 밑바닥까지를 체험하신 경험이 계시고 일제 때에는 반일의 죄목으로 영어생활까지 하신 악과 타협할 수 없는 굳은 순의(殉義)에 불타는 인격자이십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사회전반의 모든 생활을 가장 잘 아시고 느낄 수 있으시기에 부하직원의 생활이나 농민 노동자의 생활을 이론적으로가 아니고 직접 당신이 느낄 수 있는 폭이 넓은 생활의 선험(先驗)자이십니다. 이번에 듣기에 미국에서 친히 핏땀 흘려 얻어오신 누거만(累巨萬)의 돈을 수재민에게 던지실 수 있는 선이 굵은 어른이십니다.
공사를 처리하실 때는 냉혹하게 보일 정도로 엄정하시기 때문에 예하 직원에게 오해를 받으시기 일수이지만 주교님을 오래 모신 분은 신명을 바친 충의심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요. 그 수가 많은 것입니다. 문장의 졸렬로 실례되는 것이 있으면 널리 양해를 빕니다.
曺天壽(대구 대륜중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