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에서 한달에 두번씩 발행하던 『가톨릭순보』가 『가톨릭시보』라는 이름으로 한주일에 한번씩 발행하게 된 것은 3년전부터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가톨릭시보』의 발가은 오지리 출신의 서기호 신부님의 물심양면에 걸친 원조와 지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바이며 서신부님의 그간 노고에 대하여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이러한 서신부님의 지도 육성하에 『가톨릭시보』는 구라파 유학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신상조 신부님을 주필로 모시고 강달수씨를 편집국장으로 삼아서 꾸준한 발전을 계속하여 어느덧 새해를 넘기게 되는 오늘날에는 다만 대구대교구의 간행물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가톨릭기관지로서의 사명과 면목을 갖추게 되었으니 그간 여러가지의 곤란을 무릅쓰고 발간에 온갖 힘을 기울여 주신 관계 제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가톨릭시보』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오직 하나의 주간 가톨릭기관지인 것이다.
나는 주일 첨례를 마치고 성당 사무실에 들러서 이 『가톨릭시보』를 찾아다봄을 주일날의 일과로 삼고 있다. 이 『가톨릭시보』에 보도되는 국내외의 여러가지 새 소식은 나의 지식을 넓혀 주고 교리에 대한 여러 신부님들의 강좌, 강론, 해설은 신덕의 양식으로 되고 있다.
특히 이감수 신부님의 공산주의에 대한 문답식 해설 같은 글은 공산주의의 침략을 이모저모로 직접 받고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참으로 요긴하고도 귀중한 글들이었다. 인간을 한낱 물질로 밖에 보지 않는 유물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굳건한 세계적 단체는 바로 우리 가톨릭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시보』는 앞으로 보다 더 인류의 독소인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공산주의자들의 개종담 같은 것을 많이 발표하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가톨릭시보』가 주간ㄴ이니만큼 그 전 주간의 국내의 가톨릭 「뉴스」를 보도함은 물론 가톨릭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의 정치 문제에 대한 보도 및 해설같은 것도 지면이 허용되는 대로 실려주었으면 하는 것도 바라는 바의 하나인 것이다. 물론 제한된 돈과 사원을 가지고 이러한 넓은 범위의 일까지를 다루기란 참으로 힘드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곤란을 극복하는 길의 하나는 『가톨릭시보』가 독자를 보다 많이 얻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많이 얻으려면 그만큼 『가톨릭시보』의 내용이 보다 좋아져야 할 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이제까지의 『가톨릭시보』의 독자는 주로 성당의 지도층인물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독자층을 넓히는 의미에 있어서도 『가톨릭시보』는 오늘의 우리교구가 당면한 문제들을 보다 많이 다룸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가톨릭시보』는 그 독자의 대상을 청년층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하려며는 『가톨릭시보』의 기사내용이 청년층의 당면한 현실 문제들을 보다 많이 다루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시보가 새해부터는 더욱 지면을 충실화하여 명실공히 전국적인 가톨릭신문으로 발전하겠다는 광고를 읽고 반가와 하는 바이며 앞날에 보다 큰 발전이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 바이다. 오늘의 시대는 「매스 코뮤니케이션」의 시대인 것이다.
대중은 신문의 도보에 의하여 큰 감화를 받고 국내외의 움직임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인 것이다. 『가톨릭시보』가 어지러운 이 세태 속에 있어서 『사랑과 평화』를 이룩하는 일의 횃불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펜」을 놓는다. 다만 값을 올리는 일은 도리어 독자를 잃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柳洪烈(서울대학교 문리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