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 출판물보급주일이다. 예년대로 오늘 강론에서는 교회출판물의 중대성을 듣고 본당 내의 「악숀」 단체와 유지들에 의해 교회 출판물을 돕는 행사를 지내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예년대로의 오늘 행사를 강조하는 동시에 몇가지 근본문제를 생각해 보고저 한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매스콤」에 관한 헌장 곧 이 출판물의 건전한 발전 및 그 보급을 위해 이를 한 헌장(憲章)으로 선포했다. 우리는 바로 그 후의 첫 6순주일(=교회출판물보급주일)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동 헌장에서 무슨 새 사실을 얻을 수 있다기 보다는 교회 출판이 직접 간접으로 교회활동의 중대한 역할을 하게된 이후의 모든 교회의 공식적인 태도를 남김없이 종합했고 앞날의 일대 지침이 된 것을 충분히 교시해준데 큰 의의가 있는 줄 안다.
가톨릭 신자들의 자랑할 전통은 언제 어디서나 교회가 명하시는 그 일 앞에서는 참 일사불란의 대오(隊伍)로 오직 전진해았던 것이다. 그것은 20세기 간의 그 어느 시대에 있어도 찬연한 역사를 장만했고 그 수고의 값은 그대로 다음 시대에 물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특히 이 「매스콤」 분야에 있어서 그러한 단순한 공식(公式)만을 내놓기에는 너무나 복잡 희괴하게 엉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 헌장은 이 점을 주의깊게 그리고 친절히 지적해주고 있다.
우리는 동 헌장의 정신대로 교회출판물을 발전시키고 보급해 갈 시대적 사명 앞에 있다.
그런데 한국서 교회출판물의 발전, 보급이 부진한 것은 어디 그 원인이 있는가? 이 또한 하나의 큰 문제로 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우선 한 종사자의 입장에서 그 한가지 원인만을 든다면, 교회출판물은 너무나 충실한 학교교과서 같은 엄격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교과서 만큼 중요하고 필요불가결한 서적은 없겠지만 그 만큼 경원시 되고 즐겨 읽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러한 문제는 하나의 방법적인, 따라서 지극히 피상적인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생길 수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령 국민학교 아동들 앞에 어려운 철학을 말하거나 반대로 대학생들 앞에 체계없는 말을 들려준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비꾸러진 사태가 교회 출판계에도 없지 않다면 어찌 근본적인데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겠는가?
원양을 항해하는 한 여객선 내에도 하나의 여론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교회 안에 여론이 없을 수 없다. 여론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비로소 건전한 방향을 가질 수 있다. 한말로 언론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자유는 교회출판물 발전에 큰 배경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만 그것은 민주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언론의 개념과는 상위(相違)한 것이다.
천주께서 실립한 교회라는 계급사회 내에서의 그와같은 자유는 그 양상(樣相)을 달리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 구별을 잘못하게 되면, 민주사회에서의 그 개념을 그대로 교회 내에 들고와서 적지않는 이견(異見)을 발생케 할 수 있다.
(이 구별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나의 견해인 것을 밝혀둔다)
비오 12세는 『여론은 도처에서의 사실이 자연히 울려진 자연적 울림이요 인간의 정신과 판단 가운데 놓여진 사태』이라고 하고 『그들의 인격적 및 사회적 행동의 의식(意識)으로 된 정상적 사회는 그들이 소속된 집단에 긴밀히 관여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이런 관계가 실현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활기가 없고 병폐가 깃들며 병든 사회생활인 것을 본다』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말씀은 비단 일반사회 뿐 아니라 교회라는 거룩한 계통(階統)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공론이 잘 신앙될 길은 무엇인가? 이 문제 또한 하나의 큰 과재로 다룰만한 중대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선행할 일은 그 조성책이 무엇이냐 하는거와 어떤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의 노력은 개인의 독단과 편협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절대의 진리에서 출발하며 어떤 공론의 종합을 가지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니의 뜻대로 그로조차 온 교육의 권리를 장악하고 있는 교회가 그 원칙을 견지하면서, 그러하면서도 건전한 여론의 자유로운 발전을 배경으로 한 교회출판물 발전의 현대적 요구 앞에 직면했다.
이 원칙 앞에 특히 우리 한국 가톨릭출판계는 새로운 검토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