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한결 신선해졌다. 올 여름같은 더위가 언제 또 있었더냐! 곧잘 듣는 말이다. 8·15 몽소승천첨례 전날 그 찌는듯한 복 중에 본사를 찾은 덱스트라신부(셀라 인도네시아 대표)는 한다는 말씀이 『참 신선한 한국의 여름이 부럽군요. 우리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해를 두고도 이런 날이 얼마 되지 않지요』라고. 하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들이 막히고 말았다. 하기야 열풍의 예방삼아 창문을 닫고 지내는 그곳 더위만 할 수 있으랴. ▲어쨌든 처서(處暑)를 바라보는 우리네 세시(歲時)란 「카렌다」를 넘기듯 아기자기하고 또 허전한 것마져 찾아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을이 평년작은 넘길 수 있다니 든든하고 그처럼 서슬이 등등하던 특례법(特例法) 등을 헌법정신에 입각, 곧 폐지될 가망이라니 이 또한 오묘한 계절의 표정같이 반갑다. 정녕 풍성한 가을이오고 한숨과 시름을 거들날이 올 것인가?.
▲아시아 사회 경제생활 연구회(셀라) 한국 「세미나」에 동남아 10개국서 참가한 몇 분 예수회 신부님들과 사회니 경제니 하는 것을 좀 떠나서 문화면에 화제를 돌려보았다. 대만 보인(輔仁)대학교수 예수회원 장(中國人) 신부는 『문화란 것이 어디 눈에 보이는 것만이겠읍니까. 우리 사회·경제문제 전문가들이 한국은 국민소득 80「달라」의 국민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한국문화를 대한다면 우선 대단한 실례가 아닐까요. 나는 교육수준을 포함하는 이곳의 정신문화의 수준을 계산할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외국의 교육을 받은 젊은 지성인들 사이에서 보다 저 위풍이 당당한 점잔은 할아버지들의 정중한 모습, 그리고 자존심같은 무언(無言?) 그것을 보고 짐작할 수 있읍니다.』 절실한 표현 몇 군데를 필기해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만일 성직자가 아니고 일개 외교관이었다면 진정을 의심할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 사회·경제생활을 강조하는 그만큼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인간존엄」을 찾을 길이 없겠다. 「휴메니즘」과 병행(倂行)해 가자는 가톨릭 사회·경제관과도 과히 동떨어진 생각은 아니리라.
국민소득으로 봐서 끝에서 둘째가는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실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