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가정법원(家庭法院)이 오는 10월1일부로 서울에서 발족을 보게되었다. 혼인·이혼·상속·부양·양자 및 소년비행(少年非行)에 관계된 가정문제 등을 일반 법원에서 소송(訴訟)의 형식으로 다루던 것을 가정법원은 이를 비공개리(非公開裡)에 그것도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정신의학 등 전문과학의 협조를 얻어서 조정(調停)하고 심판하게 되었다. 이같이 가정법원을 두는 이유는 특별이 가정문제(싸움)나 소년의 탈선행위 등이 단순한 법률 문제일 뿐 아니라 먼저 인간의 문제요 사회문제이라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 재판제도에 이만치 발전된 법원을 하나 더 가지게 된 것은 경하할만한 일이며 앞날의 그 운영에 대한 예민하고 깊은 관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일반법원과 가정법원이 명확히 구분되는 특색의 하나는 조정위원회(調停委員會)를 두어 가정문제라는 인간의 문제요 동사에 사회적인 문제들을 법관만이 심판하지 않고 널리 사회인사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들어서 조정 심판하는데 있다. 이 점은 일종의 배심제도(陪審制度)와 같다. 그러나 가정법원의 조정위원회 구성(構成)은 일반 사회인 즉 전문지식 및 경험이 없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정신의학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인간의 문제에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로인한 사회문제의 소재(所在)에 항상 깊은 관심과 또한 밀접한 관련(關聯)을 맺고 있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법원의 조정위원들만이 아니라 직접 그 법원장(法院長)도 가정문제와 소년보호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사회사업가·교육학·심리학·사회학 및 정신의학의 제단체와 긴밀한 연락과 충분한 협력을 얻을 수 있는 법관이라야 할 것이다. 조정위원회 선임(選任)은 가정법원장이 해마다 사회사업가·사회학자·교육학자·심라학자·정신과 의사 혹은 덕망이 있는 인격자 중에서 위촉하거나 당사자 합의로 선임하게 마련이다.
가정법원은 앞에 언급한대로 비공개(非公開)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문보도 등도 물론 금지되고 있으며 조정위원들은 직무상 얻은 남의 비밀, 평의(評議)의 경과 또는 내용을 누설할 수 없는데 이것은 조정위원들의 직책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가정법원의 조직 및 절차 등을 대체로 눈여겨 보더라도 영·미의 배심제도나 일본의 가정제판소 등의 불철저한 곳과 결함이 잘 보완(補完)되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우수한 법조문(法條文)보다 운영의 묘(妙)를 얻어야 하겠음을 더 말해서 무엇하랴. 운영의 묘를 얻는데는 먼저 조정위원을 선임하기에 달려있고 또 그분들이 얼마나 직분(職分)을 성실이 수행하느냐 하는데 달려있는 줄 안다. 단지 자기들의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여 과학적인 조정 심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정법원 본래의 목표를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적인 심판이란 가정법원에 국한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가정법원은 지방법원 아래 있고 간이(簡易) 재판보다는 상급에 있다는 정도로 여긴다면 인간의 문제와 사회문제를 보다 신중한 방법으로 취급한다는 취지와 동떨어져 버릴 수도 있겠다. 그 대상은 부녀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건전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연소자들이 드나들 것을 상상해 볼 때 비록 봉사의 정신은 법조마다 표현되어 있으나 여간 사려있고 신중한 운영을 하지 않고서는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가정법은 재판(_判)에 앞서 가능한 조정을 앞세우고 있는데 큰 의의가 있다. 조정이 성립(成立)되었을 때는 심판과 동일한 법률적 효려을 낼 수 있게 마련인데 이것은 단지 수속상의 번잡과 비용을 감소시켜준다기 보다, 가정문제는 이같이 조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조정활동에 큰 기대와 신중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같이 가정법원의 조정·심판이 인간 및 사회적으로 주게될 영향 등을 생각해 볼 때 거기엔 반드시 큰 원리·원칙이 지배되어 있어야만 하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바 있다.
이번 서울에서 발족을 보게되는 가정법원은 한갖 소년법원을 발전시킨 것인듯 생각할 수 있으나, 시초부터 의욕적인 활동과 봉사정신으로 좋은 전통을 지어주지 못한다면 전국적으로 증설될 길을 터주지 못할 것이다. 교회는 가정법원이 요청하는 일이 있다면 항상 최선의 협조를 보내기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