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南山) 잔디밭에는 메뚜기가 많았다. 잔디를 거닐면 여기저기 푸릉푸릉 청메뚜기들이 떼를 지어 날랐다. 이 메뚜기 잡는 맛에 여름이 되면, 아이들끼리 늘 남산에 올라갔다.
메뚜기를 쫓다가 더우면 옷동을 벗어제끼고 그래도 더우면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딩굴었다.
느티나무 아래서 딩굴 때면, 왕개미를 잡아가지고, 거꾸로 하여 빨군 하였는데 그것은 시큼시큼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어느번엔 개미를 거꾸로 빤다는게 그만 입 있는 데를 빨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놈의 개미란 놈이 혀를 물고 느러지는 바람에 혼이 난 일이 있다.
남산 잔디밭이 아니면 실에다 낚시를 달아 싸릿대에다 비끄러맨 낚싯대를 메고 물병을 들고 광석(廣石)개로 나갔다. 미끼는 밥알 메뚜기 잠자리 지렁이같은 것이었는데 한참이면 물병이 가득찼다. 거의 「중태기」라는 손가락만큼씩한 것이었는데 붕어도 많이 잡혔다.
그런데 고기잡이 하는 시간이 한참이면 미역감는 시간은 두참이었다. 미역감는다는 것은 별 게 아니라 물장난을 치는 일이었다. 바위에서 누가 더 멀리 물로 뛰어 들어가나… 하는 내기, 누가 더 많이 물 속에 숨을 안 쉬고 들어가 있나… 하는 내기, 그리고 헤엄친다는 것은 발로 물장구를 치는 것이고 그런 일들에 실증이 나면 편을 갈라서 물싸움을 했다.
근래에 와서는 여름이 되면 그러한 어린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풀밭을 맨발로 달리는 그 감촉이라든가, 붕어가 손바닥에서 팔딱거리던 그 간지러움이라던가… 수많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새울음소리, 메뚜기 구어먹던 맛, 참새잡아 구어먹던 맛, 밭에서 메 캐먹던 일_ 콩청대 해 먹던 일… 등이 바로 엇그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또, 수양산(首陽山)으로 싱아와 칡뿌리 캐러다니던 생각 역시 간절하다.
이러한 어릴 때 일이 그리워지는 것은 지금 도시에서 살고있기 때문일까.
청년기에 들어서는 여행을 몹시 좋아했고 더우기 이름 없는 산간지대나 농촌지대를 즐겨 도보여행했던 것도 그러한 어릴쩍 생활을 연장시키고 싶던 어떠한 심리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지음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어릴때의 자연환경이 지금의 나에게 큰 경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일이다. 적어도 내 건강에 대하여 그러하다. 심한 정신노동과 거기에 따르는 불건강한 생활에서 오는 과로에도 불구하고, 별로 앓는 일이 없을 뿐더러 그리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것은, 그러한 자연 속에서 자라난 덕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러한 추억과 더부러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 도시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후담에 어떠한 추억을 갖게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년 후 또는 30년 후 이들이 회상할 수 있는 것은 병든 도시의 모습과 거치른 세상 인심들이 아닐까….
자동차에 주의하라고 타일르던 부모의 근심스러운 얼굴과 먼지를 뒤집어 써가며 차와 행인을 비껴가며 길모퉁이에서 다마굴리기 하던 일이 생각될 것이 아닐까….
문밖에만 나가면 경계해야 하는 어린이들의 마음… 후일 이들이 커서 신경질이 되고 남의 눈치나 보고 협잡꾼이 되는 불건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된다고 해서 그 책임을 오로지 그들에게만 미룰 수 있을까….
빛갈과 향기를 자랑하는 안마당의 화초밭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서면 바깥 마당에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가 늘어서서 철따라 익고, 그 옆의 삼밭 두_에는 뽕나무가 늘어서서, 익은 열매만 따 먹으며 돌아다녀도 한 나절이 걸리던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할 때면 자식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만난을 무릅쓰고라도 한동(洞)에 한 개소씩 아동공원(兒童公園)을 만들어주는 위정자는 없는 것일까….
여름이면 가끔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李仁石(_總文人協會 事務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