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도 한국 천주교회 통계표(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작성)가 발표되었다.
동 표에 의하면 1963년도 현재 한국 신자수는 575,789명이다. 10년 전 1953년의 한국 신자수는 166,471명이었다. 그간 실로 409,318명이 증가한 것이다. 62년도에 비교하면 47,489명이 증가했다. 61년도와 62년간에는 47,753명이 증가했었다. 60-61년간은 40,656명의 증가를 보여주었다. 53년에서 60년 사이의 평균증가를 대략 셈하여 보더라도 연간 4만을 내려서지 않았다.
가령 1953년에서 63년간의 증가비율을 얻는다면 10년간 약 3.5배를 증가한 것인데 이것은 53년 이후 수년간 확실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증가비율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연간 4만명 증가선은 안정(安定)된 것으로서 이대로 나간다면 1970년대에 가서는 한국 가톨릭 인구가 100만명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57만5천7백여 명을 사목하는 신부의 수효는 한국인이 327명이며 외국인이 270명이다. 합계 597명의 성직자가 그 1천배에 가까운 신자들을 사목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신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본당 및 종군신부만으로 그 평균을 얻는다면 신부 1인당 신자수는 1,500명을 넘을 것이다. 하편 대신학생은 370명이다.
신부 1인당 신자 1,500명을 유지해 가기 위해서도 1970년대의 신부 수효는 1,194명이 필요한 것이다. 대신학생 370명 가운데서 연간 약 60명의 신부를 배출시킬 수 있어야 하겠는데 지금까지의 실적으로서는 그 절반도 어려웠었다. 성직자 대 신자수는 극히 기본적인 비교인 것이다. 그밖에 신자 증가에 따르는 필수적인 건설과 시설의 확장이나 제반 준비를 일일이 열거한다면 그 방면의 일대 적신호(赤信號)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연 1970년대에 가서 한국 가톨릭 인구는 100만 신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100만 한국 가톨릭 신자라는 어감(語感)에 한편 의욕을 느끼면서 한편 불안감같은 의아심을 가지게도 해준다.
그렇지만 인구의 자연 증가만을 예상해 보더라도 아직도 미미한 「퍼센테이지」인 것이다. 그리고 보면 1970년대가 되기 전에라도 100만대를 넘길 수 있도록 치열한 의욕을 가질만한 일이다.
어떤 곳에서도 경제사정이나 사회형편이 불안한 때에 전교활동은 활발하다고 한다. 그런 종류의 불안은 조만간 안정에 도달하는 날을 독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불안상태는 진정한 안전을 확약해주는 의미에 있어서의 그야말로 전교의 황금기(黃金期)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바로 우리의 신자 증가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터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의 황금기」란 말을 함부로 쓰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럽다. 첫째 경제 내지 사회적 불안 등이 전교활동을 촉진해준다는 표면적 이유를 들기가 어렵고 둘째로는 성직자와 열심한 평신자들의 전교에 대한 비상한 노력을 가볍게 평가해 버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교실태를 잠시 돌아보고 간 어떤 분은(성명은 밝히지 않겠다) 전교 「붐」이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유 중에 마치 집단개종(集團改宗)이 성행하고 있는 것처럼 언급했다.
사실 집단개종의 사례(事例)는 없었으나 만일 허술히 대량 입교를 서둘으고 있다는 어떤 인상을 준데서 나온 말이라면 의미심중하게 받아들일만한 점도 없지 않다.
오늘 한국 가톨릭의 당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는 이 자랑할만한 신자증가를 유지해가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대책만도 벅찬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더욱 활발한 전교에의 의욕을 꺾는 소극적인 발언이 아니다. 우리가 열성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건설을 해갈 수 없다.
그 때문에 전교의 모든 태세(態勢)를 종합적으로 장만해갈 수 있어야 한다. 숫자는 만능(萬能)이 아니다. 수를 과시할 때 그 안에는 반드시 허술한 일이 생기고 앞에 말한 전교라는 종합적 태세에 뜻하지 않는 탈이 생기게 해줄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의 신자 증가는 한편 큰 희망을 주면서 한편으로 그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과 종합적인 전교태세에 깊은 관심을 돌리게 해주는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