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국내 저명한 인사들이 가톨릭에 입교 영세한 사실이 과거 한국천주교회사에 드물게 보는 현상이고 이어 몇일 전 9월29일 순교복자축일을 기회로 14명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한국 천주교회가 독특한 길로 첫 출발을 했고 백년을 넘는-비록 산발적이었으나- 긴 세월을 박해를 통해서 계속해왔다. 복음의 씨를 뿌린 이들과 교회 초기에 그것을 신봉한 이들이 그 당시 유명한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무서운 칼날을 피해 산중으로 벽촌으로 몸을 감추어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회와 격리한 생활이었다. 2대 3대를 내려가면서 정식 사회의 변천과는 병행되지 않는 답보적인 생활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회인이 알고 있는 형(型) 간판에 맞는 방식이나 제도에 의한 교육을 지키지 못했다.
경제면에 있어서도 산중에서 겨우 도기(陶器)나 신탄(薪炭)을 주로 하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생활수준이란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면에서나 경제면에서나 신앙을 견지함으로 인한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자연히 하층계급에 속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하여 신앙의 자유를 가지게 되고 포교활동이 활발하게 됨에 따라 가톨릭의 신자 수가 불어가기는 했지만 해방 전후를 해서 한국 가톨릭 신자의 교육, 경제상으로 본 율(率)은 전인구와 비해서 훨씬 낮고 일반 국민들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대한 태도란 「못 사는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이란 틀에 박힌 인상을 갖게했고 유명한 사람이 하나라도 입교하면 큰 괴이한 사실처럼 떠들석했다.
이런 현상이 차츰 변천해간 것이 최근의 영세입교자들 중 많은 이가 지식층에 속한다는 사실로 밝혀졌다.
위선 각 도시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 『요즘 대학교수나 지식인들이 상당한 관심을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든가 그들이 『종교를 가지면 가톨릭을 택하겠다』 등의 심리적 동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앞에 두고 가톨릭자(者)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
한국의 가톨릭은 오늘 터를 닦는 시대가 거름을 가꾸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준비 작업은 이미 순교 선열들의 고귀한 피와 쓰라린 현세고난으로 증거한 영웅적 신앙고백으로 장만됐다.
지금은 곡식을 거두어 들일 때이다. 그런데 뿌린 씨와 소비된 비료는 풍선한 열매를 맺어주고 있으나 거두는 작업에 서툴러 하다가는 결실된 열매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귀한 생명을 버려야 신앙을 보존할 수 있던 순교자들의 그 고통이나, 사회 환경상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전교할 수 있고 또한 교우들 중 정치·경제·교육·기타 각 사회 제도에서 권위를 가진 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옳은 본질적인 신앙 생활을 보내기에 소요되는 용단과 노력이 그렇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어느 민족이나 문화라도 대개 초창기와 황금시대 그리고 폐퇴(폐退)란 「코오스」를 되풀이하고 있고 종교 역시 인간의 모임인 이상 이 현세적 운명 아닌 운명적 「싸이클」을 줄타고 온 것이 그 대부분이 아닌가?
이런 길을 우리는 피할 수 있다고 큰 소리할 수 없다. 입교 영세한 저명한 인사들이 그 대부분 정치적으로나 학벌로써 이름이 알려진 분들이다.
즉 옛식으로 사회 가치를 그대로 따르거나 사회변천과 거기에 수반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소위 신인(新人)들이 다 우러러보는 분들이다.
여기서 영세 입교한 훌륭한 분들이 증가하게 되면 옳은 신앙생활을 보내는 신자들에게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교회의 외적 확장과 사회적 지위의 향상으로 신자들이 자칫하면 신앙을 본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그대로의 본질을 차츰 잊고 현세적 물질적 가치에 눈이 어두워져 교회 또는 신자란 미명을 이용하여 현세 가치 추구에 급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들에게는 저명 지식인들의 입교가 오히려 해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단체의 외적 발전과 그 내적요소의 충실성은 반비례된다는 원칙이 오늘날 활발해진 한국 가톨릭에 적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인들의 영세 입교율이 높아지는 것은 종교 가치의 진정한 파악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기뻐하면서도 외곡된 신앙생활이 우리 사회와 같은 분위기에서 쉽게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신자들은 저명 인사들의 입교를 옳은 태도로서 환영해야 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