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자 가톨릭시보 「遍歷譯」에서 김남수 신부님의 「司祭의 수난」을 읽고 이맛살이 찌푸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교우로서 유다스가 되고 「바리세이」가 되어 신부님들을 괴롭히는 사례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김신부님이 얼마나 교우들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괴로우셨기에 그 체험담을 「시보」에 공개하여 전국 신자에게 경고 겸 호소를 하셨을가 생각하매 모골이 소연(悚然)하다.
김신부님이 체험하신 지방의 사정은 알 수가 없으나 내가 문견한 범위에서는 다소 이견(異見)이 있다. 어떤 본당이든지 소위 여당파(與黨派)와 야당파(野黨派)가 생기기 쉬운데 이것은 본당 신부님이 불편부당(不偏不黨)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을 회장에 등용하게 되면 점잖고 무게있는 교우는 신부를 멀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당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해서 언변이 좋다고 해서 경제력이 있다고 해서 회장에 등용하는 일이 있는데 이렇게 등용한 회장에게서 배신을 당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부님이 배신을 당하신다면 그 배신자는 의례히 측근자 중에서 발견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임할 수 없는 교우를 가까이한 까닭이니 사람을 잘못보고 신임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즉 현명치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 신부님의 신임을 얻으려하는 사람은 대개 여자는 호기심에서 남자는 물욕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이런 불순한 무리는 현명공정한 신부님 앞에는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 경리를 회장단에 맡기면 앙ㄴ심이 안 되니 본당 신부가 직접 맡아 취급하고 교우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하나 본당 신부의 결산보고가 교우들의 납득이 가지 않는데야 어찌하랴. 신부님이나 수녀가 책임지고 취급한 경리에도 교우들의 추궁에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어찌하랴.
근래 교우 수효가 격증한다. 그 많은 교우 중에 유다스도 있고 「바리세이」도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이 전대와 지팡이와 신도 가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충복으로서 사람의 구령에만 희생적으로 봉사하게 되면 그 성덕 앞에 교우들은 자연 머리가 숙어지고 감히 신부님을 괴롭히는 무리가 생겨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 바이다.
요안 비엔네 성인신부님 앞에는 중상모략하는 신부는 있었으나 교우들은 성인 신부님께 모두 감복하여 신부님께 「수난의 괴로움」을 끼친 일이 없었다.
(妄言多謝)
曺元煥